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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3일만의 골' 심영성이 돌아왔다

by 박찬준 기자
심영성. 사진제공=제주 유나이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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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덤했다. 특별한 세리머니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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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유망주' 심영성(25·제주)은 의외로 덤덤했다. 심영성은 23일 인천 코레일과의 FA컵 32강전에서 전반 41분 선제골을 터트리며 제주의 2대1 승리를 이끌었다. 2009년 5월 5일 피스컵코리아 4라운드 경남 원정에서 후반 39분 결승골(2대1 제주 승)을 기록한 이후 무려 1113일만에 기록한 골이었다. 그에게 '1113일만의 골이라 특별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벌써 그렇게 됐나. 3년만의 골이라고 하니까 그랬는데 1113일이라고 하니까 진짜 오래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잠시 회상에 잠긴 듯 했다. 5차례의 수술과 뼈를 깎는 재활의 고통은 그를 성숙하게 만들었다.

2009년까지 심영성은 한국 축구 차세대 에이스로 불렸다. 2006년 아시아청소년대회(20세 이하)에서 5골로 득점왕에 올랐다. 그는 이청용(볼턴) 기성용(셀틱) 못지 않은 스타였다. 2007년 청소년 월드컵(20세 이하)에는 에이스의 상징인 10번을 달았다. K-리그 무대에서도 거침없었다. 2007년 제주로 이적해 그해 25경기 5골-1도움, 2008년 23경기 7골-3도움, 2009년 25경기 2골-1도움을 올렸다. 2009년 말에는 러시아 프로팀들의 러브콜이 쏟아졌다. 순탄한 축구인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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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10일, 그의 축구인생은 악몽으로 바뀌었다. 전지훈련 기간 귀가하기 위해 운전을 하다 나무를 들이받았다. 정신을 차리고 차에서 기어나왔는데 뭔가 이상했다. 오른 무릎에 감각이 없었다. 슬개골(무릎의 뚜껑뼈)이 수십개 조각으로 부셔졌다. 긴급 후송돼 제주 한라병원을 찾았을 때 병원 관계자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축구는 커녕 일반인으로 제대로 살아가기 힘들다." 축구 선수로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하늘도 도왔다. 당시 서귀포에서 대한선수트레이너협회 세미나가 열렸다. 무릎 분야의 대가로 꼽히는 김진구 명동 백병원 부원장이 인근에 있었다. 급히 연락이 닿아 이튿날 날이 밝자 김 부원장 손을 잡고 서울로 올라가 바로 수술을 했다. 4시간에 걸친 대수술이었다. 수십조각으로 흩어진 뼈를 붙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후 네 차례 더 수술대에 올랐다. 5개월간 병상에 누웠다. 이후 9개월간 재활에 매달렸다. 재활기간 동안 암투병 중이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럴 수록 이를 더 악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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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11년 6월 29일 수원과의 컵대회 8강전에서 감격의 복귀전을 치렀다. 박경훈 제주 감독은 정상적인 몸상태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해 심영성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했다. 8차례 K-리그 무대를 밟으며 2012년을 맞이했다. 3년만에 맞이한 동계훈련이었다. 심영성은 기분좋은 추억이 많은 등번호 10번을 다시 받았다. 보직도 다시 공격수로 돌아왔다. 그러나 제주에 좋은 공격수들이 많아 좀처럼 출전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심영성은 조급해 하지 않았다, 그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 경기를 못나가면 '내가 쟤보다 잘하는데'라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연습하는 것도 즐겁다. 내가 밑이라고 생각하고 겸손하게 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선수인지라 경기장을 누비고 싶은 욕심은 숨기지 않았다. 심영성은 "골욕심은 없다. 그래도 주전 자리를 잡고 싶다는 생각은 있다. 아직 기회가 많으니까 열심히 준비할 것이다"고 했다. 모두가 끝났다고 했던 그의 축구인생은 이제 시작이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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