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뛰어 올랐다. 머리를 갖다댔다. 스치듯 지나간 볼은 골대 오른쪽 구석에 꽂혔다.
전반전 페널티킥을 실축했던 안정환은 활짝 웃었다. 아내에게 바치는 반지 세리머니를 하면서 그라운드를 질주했다. 5000만 붉은악마가 환호했다. 한국 축구에 새 역사가 쓰였다. 그렇게 안정환은 2002년 한-일월드컵이 낳은 국민영웅이 됐다. 하지만 이 골이 파란만장한 축구 인생의 서막이 될 지는 꿈에도 몰랐다. 꿈을 키워가던 이탈리아 무대를 떠나야 했다. 안정환을 데리고 있던 페루자의 가우치 구단주는 '안정환 때문에 이탈리아가 16강에서 탈락했다'며 일방적으로 방출을 통보했다. 안정환은 당시 팀 전술에 막 적응을 시작하면서 나카타 히데토시에 이은 또 하나의 '아시아 돌풍'을 만들어 가던 때였다. 안정환의 세리에A 도전기는 그렇게 허무하게 마무리 됐다.
월드컵 4강의 추억, 아픔을 이겨낼 수 있던 원동력
10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아픔은 여전한 모습이다. 한-일월드컵 10주년을 맞아 스포츠조선과 단독 인터뷰에 나선 안정환은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이탈리아전 득점을 꼽았다. "프로선수는 누구나 골을 넣으면 기쁘다. 하지만 이탈리아전 골은 기쁨과 슬픔을 다 준 골이다." 하지만 월드컵 4강의 추억은 이런 아픔을 견뎌낼 수 있었던 힘이었다. 안정환은 "(한-일월드컵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 중 하나였다. 축구로 모든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그 때 기억은 지금도 정말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원동력이다. 나 뿐만 아니라 그때 멤버들도 비슷한 느낌일 것"이라고 말했다.
말도 많도 탈도 많은 축구 인생이었다. 한국 축구 대표 미남으로 숱한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무적선수 등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마음의 상처를 받았던 기억도 있었다. 안정환은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안정환이라는 이름을 국민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었다.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다른 선수들이 경험하지 못한 많은 일들도 겪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그는 "많은 나라에서 뛰면서 내 실력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힘든 과정이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했고, 즐길 수 있었다는 점에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홍보팀장 안정환, "K-리그, 놀이터로 만들고파"
K-리그에서 탄생한 축구선수 안정환은 은퇴 후 다시 K-리그로 돌아왔다. 자신이 성장한 리그에 뭔가 도움을 주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이 계기가 됐다. 명예 홍보팀장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경기장을 누비고 팬들과 호흡하고 있다. 안정환은 "그동안 K-리그가 지속적으로 발전을 해왔다. 팀 숫자도 늘어나고 환경도 좋아졌다. 유소년 시스템까지 갖춰졌다. 내년에 승강제가 도입되면 1부팀 숫자가 줄겠지만, 또 다른 흥미요소가 생기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축구장은 엔터테인먼트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시각도 드러냈다. "축구장이 감동과 즐거움을 느끼는 축제의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많은 이들이 콘서트나 뮤지컬을 보러 가는 기분으로 K-리그를 느끼기를 바란다." 프로 지도자의 길은 정중히 사양했다. 유소년 쪽에 좀 더 관심을 쏟겠다는 생각이다. 안정환은 "유럽에서 선수생활을 하면서 유소년 시스템을 많이 배웠다. 기초가 좋아야 훌륭한 선수가 나오고, 그 선수들이 모여 강팀이 나온다"면서 유소년 지도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뜻을 드러냈다.
안정환이 K-리그 흥행을 위한 히든카드로 내놓은 것은 한-일월드컵 10주년 기념 K-리그 올스타전이다. 자신을 포함한 한-일월드컵 멤버로 결성된 '팀2002'와 현역 최고의 선수들을 모은 '팀2012'간의 맞대결을 구상했다. 이를 위해 최근 직접 선수를 섭외하고 프레젠테이션을 실시하는 등 발로 뛰고 있다. 안정환은 "2002년에 축구로 하나가 됐던 이들이 다시 뭉쳐 K-리그를 응원할 수 있도록 하는게 최대 과제"라면서 K-리그 올스타전을 통해 감동을 선사하겠다고 약속했다. 흥행을 위한 공약을 묻자 능청스런 대답이 돌아왔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제안해주세요. (올스타전) 당일날 골을 넣으면 준비한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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