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호(제주)의 부상 소식이 날아들었다. 2012년 런던올림픽을 못 뛰게 됐다. 홍명보호 전체에 있어서는 비보였다. 하지만 모두에게 똑같지는 않았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낭보였다. 홍명보 올림픽대표팀 감독은 시리아전을 하루 앞둔 6일 "중앙 수비라인을 유심히 지켜보겠다"고 했다. 남아있는 모든 중앙수비수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이었다.
너도나도 기회를 잡겠다고 나섰다. 파주NFC(축구대표팀 트레이닝센터)는 중앙수비수들간의 경쟁의 장이었다. 7일 경기도 화성 종합경기타운에서 열린 시리아전에서 '기회'를 잡을 선수 가운데는 김기희(대구)도 있었다. 김기희는 황석호(일본 히로시마)와 함께 중앙 수비수로 선발 출전했다.
김기희는 '기회'에 강한 선수였다. 그의 축구 인생이 증명해왔다. 학생 시절 특출난 선수는 아니었다. 이혼한 홀어머니는 생계 꾸리기에 바빴다. 운동하는 아들을 100% 지원하지 못했다. 김기희는 부모의 지원 아래 맘껏 뛰는 다른 선수들을 부러워했다. 움츠러들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주눅은 이내 이타심으로 바뀌었다. 부경고에 들어가면서 이타적인 플레이가 빛을 발했다. 축구 명문 연세대에 진학했다. 김기희가 축구 인생에서 꽉 움켜쥔 첫번째 기회였다.
K-리그 무대는 위기였다. 수비형 미드필더인 김기희는 2011년 대구의 첫 경기에서 선발출전했다. 신인에게 1라운드 선발출전은 큰 짐이었다. 90분을 정신없이 보냈다. 2대3으로 졌다. 김기희에게는 2군행이라는 통보가 날아들었다. 와신상담했다. 당시 대구를 맡았던 이영진 감독은 김기희에게 수비수로의 보직 전환을 제의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심정이었다. 2군에서 수비수로 역량을 쌓았다. 기회가 왔다. 여름 대구는 K-리그 승부조작 광풍에 휘말렸다. 주전 수비수가 팀을 떠났다. 지난해 7월 23일 포항전에서 김기희를 내세웠다. 이후 대구의 중앙수비수 자리는 김기희의 몫이 됐다. 김기희가 성공으로 연결한 두번째 기회였다.
또 다시 기로에 섰다. 올 시즌 초였다. 대구는 브라질 출신의 모아시르 감독을 데려왔다. 모아시르 감독은 모든 선수들을 동일선상에 놓았다. 이름값은 인정하지 않았다. 김기희는 불리했다. 올해 초 올림픽대표팀의 일본전지훈련에 다녀왔다. 늦게 합류한만큼 시간이 부족했다. 특유의 성실성과 수비력으로 맞섰다. 2012년 시즌이 시작되기 직전 대구의 주전 중앙수비수는 김기희였다. 모아시르 감독은 "왜 김기희가 올림픽대표팀 선수인지를 알겠다"고 말했다. 3월 31일 전북과의 원정경기였다. 2-2로 맞선 후반 추가시간. 김기희는 헤딩 결승골을 뽑아냈다. 모아시르 감독의 믿음에 보답했다. 해피엔딩으로 끝난 세번째 기회였다.
세 번의 기회를 모두 성공으로 연결시킨 김기희는 시리아전에서 얻은 기회도 놓치지 않았다. 본업인 수비는 안정적이었다. 비록 시리아 선발 선수 가운데 골키퍼를 제외한 10명이 18~19세인 점을 감안해도 노련하고 안정감있는 수비를 보여주었다.
공격력은 합격점이었다.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공격 가담 능력이 빛났다. 0-0으로 팽팽하던 전반 33분 이종원(부산)의 프리킥을 뒷머리로 넣었다. 전반 45분 윤일록(경남)이 추가골을 넣었다. 후반 초반 1골을 내주었다. 2-1로 쫓기던 후반 16분 다시 김기희의 머리가 번쩍했다. 박종우(부산)의 프리킥에 이은 황석호의 헤딩패스를 앞머리로 집어넣었다. 김기희의 활약에 만족한 홍 감독은 후반 31분 장현수를 투입했다. 장현수와의 중앙 수비수 호흡을 시험하고 싶었다. 김기희는 홍 감독의 마지막 숙제도 완벽하게 마무리하며 팀의 3대1 승리를 이끌었다.
일생일대의 기회를 역시 성공으로 마무리하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홍 감독 머리 속에 있는 런던행 비행기 좌석표에 자신의 이름을 분명히 새겨놓았다.
화성=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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