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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의 선물에 담긴 프로야구 변천사

by 민창기 기자
지난해 7월 31일 LG에서 넥센으로 트레이드된 심수창(오른쪽)과 박병호(오른쪽). 스포츠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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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양승호 롯데 감독은 한 중년 남성팬으로부터 햇반 한 상자를 받았다. 부산 사직구장 중앙 출입구 앞에 있던 이 남성팬은 양승호 감독이 나타나자, 즉석밥이 가득 담긴 상자를 내밀며 "잘 드시라"는 말을 하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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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년 팬은 양 감독이 며칠 전 아침에 김치찌개를 끊여놓고 햇반을 찾았는데 없어서 어쩔수 없이 라면을 끓여먹었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양 감독을 찾아 왔다고 했다. 중앙 출입구 경비실에 상자를 맡기고 가려 했는데 마침 양 감독이 보이자 직접 선물을 전달한 것이다.

1982년 출범해 팬들의 관심과 사랑 속에 성장한 프로야구는 올시즌 800만 관중을 바라보고 있다. 팬들의 야구 사랑은 경기 관전과 응원에 그치지 않고, 선수에게 건네는 선물로도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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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레터에서 홈런볼까지

프로야구 초기만 해도 팬이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에게 직접 선물을 전달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사실 당시에는 선물이 등장할 정도로 여유가 있는 시대도 아니었고, 선물이라고 부를 만한 것도 변변치 않았다. 팬레터가 팬이 선수와 직접 소통하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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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대 체대에 재학중이던 1984년 겨울 체력 트레이너 아르바이트생으로 타이거즈와 인연을 시작한 윤기두 KIA 운영실장은 "프로야구 초기에는 팬이 선수와 직접 만나는 문화가 없었다. 팬레터가 주류였는데, 지금처럼 팬이 선수에게 직접 팬레터를 전하는 게 아니라 구단 사무실로 보냈다. 그러면 선수별로 팬레터를 구분해 전달하곤 했다"고 회고했다.

1980년대 프로야구 초기 팬레터와 함께 자주 볼 수 있었던 게 신문기사를 정리한 스크랩북과 사진모음 이었다. 이후 프로야구의 인기가 높아지고, 경제 상황이 좋아지면서 선물이 등장했다. 지역 특산품을 보내오는 경우도 있었는데 과일이나 음료수 등 먹거리가 주류였다. 홈런타자에게 홈런볼 과자를 보내 선전을 기원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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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사직구장 덕아웃에서 롯데 양승호 감독(오른쪽)과 황재균이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m.com

김태룡 두산 단장은 "야구를 접하기 어려운 지방 팬이 선수들에게 마른 오징어나 갈치같은 걸 보내곤 했다. 선물을 받은 선수가 따로 챙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지갑이나 옷같은 혼자만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면 보통 동료 선수나 프런트에게 나눠줬다"고 했다.

선물도 시대에 따라 진화한다

올시즌 초 넥센 선수들과 프런트는 깜짝 놀랐다. 꽃미남으로 여성팬에게 인기가 높은 심수창이 선발 등판하는 날 라커로 도시락 30개가 배달됐다. 유명 패밀리 레스토랑의 4만원짜리 스테이크 도시락이었다. 심수창의 열성팬이 선발로 나서기 전에 든든하게 먹고 마운드에 오르라며 보낸 것이다. 가격으로 따져보면 100만원이 넘는 선물이었다. 선발 등판이 예고된 날 심수창의 라커 캐비넷은 편의점이 된다고 한다. 초콜릿 등 각종 선물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두산의 한 프런트도 얼마전 생일을 맞은 이용찬에게 배달된 떡 케이크와 떡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떡에 담긴 정성, 엄청난 양이 인상적이었다. 먹기 좋게 포장된 떡에는 이용찬의 등번호와 캐릭터가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롯데 외야수 황성용은 사직 홈경기가 끝나고 경기장을 나설 때마다 한 여성팬으로부터 커피를 받아 든다. 늘 같은 자리에서 이 여성팬이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구단을 통해 황성용의 연락처를 알게 된 이 팬은 1년 가까이 특별한 선물을 전달하고 있다. 넥센 강정호는 지난해 팬티 등 속옷 선물을 받고 당황했다.

예전에는 선수 개인보다 팀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팬이 많았지만 분위기가 바뀌었다. 특정 선수 열성팬이 늘고, 팬클럽이 생기면서 선수의 기념일이나 의미 있는 기록이 나올 때마다 선물을 보낸다. 무작정 선물을 보내는게 아니라 맞춤형 선물을 전달한다. 지난 5월 20일 잠실 두산전에서 개인 통산 100번째 홈런을 터트리자 바로 다음날 아이스 식혜와 떡이 전해졌다.

롯데 김수완은 언론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과일로 체리를 꼽았는데, 이후 체리 선물이 쏟아졌다고 한다. 골절상을 당했다는 기사가 뜨면 바로 다음날 사골세트가 배달되는 식이다.

LG 오지환. 스포츠조선DB

젊은 여성팬, 미혼의 젊은 선수

선물 양이 반드시 유명 스타선수에게 집중되는 건 아니다. LG 선수들 중에 선물을 가장 많이 받는 선수는 유원상 오지환 등 젊은 선수들이다. 선물에도 정석이 가득 담겨 있다. 기성품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집에서 구운 수제 쿠키 등 팬이 직접 만든 간식거리를 가져 온다고 한다.

열성팬이 많은 롯데도 마찬가지다. 홍성흔과 조성환 등 고참 선수들의 팬클럽에서 선물을 보내기도 하지만, 고원준 등 20대 초반의 젊은 선수에게 몰린다.

물론, 팬들의 연령과 관계가 있다. 개인 선물을 전하는 팬은 대개 여성이고, 10대와 20대가 가장 많다. 아무래도 나이가 비슷한 젊은 선수, 이미지가 산뜻한 선수에게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구단 관계자에 따르면 여성팬도 연령대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한다. 김기영 넥센 홍보팀장은 "20대의 경우 보통 3~4명이 함께 선수를 찾는데, 30대는 나홀로 오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간식 선물이라고 해서 무조건 먹을 수는 없다. 선수들은 음식물이 상하기 쉬운 여름철에는 햄이나 치즈 샌드위치 같은 물건이 들어와도 손을 대지 않는다. 캔음료는 환영하지만 우유 종류도 같은 이유로 먹기를 꺼린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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