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설마 오늘도…'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전날과 같이 똑같은 9회 동점, 연장 역전 드라마가 그려지고 말았다. 결승타를 친 김주찬이 경기 후 방송 인터뷰를 하며 승리를 만끽했지만 숨은 공헌자가 한 명 있었다. 바로 9회 추격의 홈런포를 터뜨린 유격수 정 훈이었다.
정 훈은 23일 잠실 LG전에서 팀이 2-4로 뒤지던 9회초 마지막 공격에서 선두타자로 등장, 상대투수 류택현을 상대로 극적인 추격의 솔로홈런을 터뜨렸다. 시즌 첫 홈런. 정 훈의 홈런포로 기세를 탄 롯데는 이틀 연속 9회 2점차 승부에서 동점을 만든 후 연장에서 대역전승을 거뒀다. 히어로가 될 수는 없었지만 팀 승리에 꼭 필요했던 값진 홈런이었다.
올시즌 1군에서 뛴 경기수도 부족했고 홈런도 없었기 때문에 냉정히 말하면 정 훈의 홈런을 기대했던 사람은 드물었다. 이런 상황에서 홈런이 나왔으니 더욱 인상적이었을 수 밖에. 동료 황재균도 경기 후 정 훈이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자 "내가 원포인트 레슨을 해줘 홈런이 나온 것 아니냐"라며 자연스럽게 타격에 대한 얘기를 꺼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날 홈런보다 더욱 빛났던 것은 정 훈의 유격수 수비였다.
정 훈은 3회말 선두타자 이병규(7번)가 친 타구를 그림과 같은 수비로 처리했다. 맞는 순간 2루수와 유격수 사이로 빠지는 타구로 생각됐으나 정 훈이 어렵게 공을 잡은 뒤 한바퀴 턴을 해 원바운드 송구로 이병규를 아웃시켰다. 관중석에서 큰 감탄사가 터져나올 만큼 멋진 수비였다. 자신감이 붙었는지 7회말 선두타자 오지환의 비슷한 타구도 깔끔하게 아웃 처리, 팀의 위기를 막아냈다. 박빙의 승부에서 1번, 9번타자가 선두타자로 나서 출루했다면 롯데로서는 상상하기 싫은 시나리오였을 것이다.
사실 정 훈은 수비보다는 공격이 돋보이는 내야수였다. 때문에 안정감있는 수비를 선호하는 양승호 감독은 정 훈을 주로 대타로 출전시킬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기회가 찾아왔다. 주전 유격수 문규현이 부상으로 빠졌고 잘나가던 박준서도 갈비뼈 타박상으로 주춤했다. 신인 신본기와 수비가 좋은 양종민은 부진 속에 2군으로 내려갔다. 남은 유격수 자원은 정 훈 1명 뿐. 정 훈은 최근 이 기회를 잡았다. 공격도 공격이지만 수비에서 확실한 모습을 보여주며 양 감독의 눈도장을 확실히 받았다. 양 감독은 경기 후 정 훈의 수비에 대해 "지난해에 비해 송구가 아주 좋아졌다. 이 정도로만 해준다면 믿고 기용할 수 있다"며 흐뭇해했다.
정 훈은 올시즌 일취월장한 수비에 대해 "그러니까 방망이를 못치잖아요"라는 알쏭달쏭한 대답을 내놨다. 홈런을 치긴 쳤지만 아직은 스스로 만족할 만한 타격감은 아니라는 뜻. 하지만 수비에서는 더 집중을 해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신감도 묻어났다. 정 훈은 "스프링캠프에서 수비에 대한 훈련을 집중적으로 한 효과가 나오는 것 같다"며 "2군에 있을 때 공필성 코치님께서 '1군에 올라가려면 이런 점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콕콕 집어 지도해주셨다. 많은 도움이 됐다. 박계원 코치님도 부족한 부분에 대해 항상 말씀해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정 훈 덕에 롯데는 행복한 고민에 빠질 듯 하다. 조만간 부상으로 2군에 내려갔던 주전 유격수 문규현이 복귀한다. 하지만 정 훈과의 선의의 경쟁을 피할 수 없을 듯 하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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