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30일 대구구장.
1루측 덕아웃에 앉아 선수들의 훈련모습을 지켜보던 넥센 김시진 감독은 우천으로 취소됐다는 소식을 들은 뒤 선발투수를 묻는 매니저의 질문에 선뜻 말하지 못했다. 결국 정민태 투수코치를 불렀다.
김 감독이 "내일 선발 누구로 할까"하고 묻자 정 코치는 "그냥 영민이로 하시죠"라고 대답. 김영민은 30일 선발 투수였다. 김 감독은 갑자기 "정 코치 네가 선발로 나가라"고 했다. 정 코치가 당황하는 눈빛을 보이자 "아니면 내가 나가던가"하고 말을 이었다. 김 감독의 돌발 발언에 정 코치가 말을 못하고 어쩔줄 몰라하자 김 감독은 "김영민으로 가자"며 1일 선발을 예고.
이어 김 감독은 "내가 지금 던져도 볼넷은 안내줄 자신있다"고 했다. 29일 삼성전서 6회 장효훈과 이보근이 2사후 4명의 타자에게 볼넷을 내줘 2점을 헌납한 것에 대한 답답함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
김 감독이 언제나 투수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볼넷을 내주지 마라"다. 그런데 장효훈이 강타자인 이승엽과 박석민을 잘 처리해 놓은 뒤 진갑용에게 내야안타를 허용하더니 갑자기 제구력 난조에 빠져 연속 볼 10개를 던진 것. 이보근을 냈지만 이보근마저 볼넷 2개를 내주며 결국 밀어내기로만 2점을 내줘 0-4까지 점수가 벌어져 추격의 의지가 꺾였다.
제구력에 대해 김 감독은 "솔직히 답이 없다. 스트라이크를 던지고 싶지 않은 투수가 어디있겠나"라며 "제구력은 결국 자신감과 연결되는 것인데 너무 잘던지려고 해도 그렇게 된다"고 했다.
선발 예고를 쉽게 못한 또 하나의 이유는 김병현 때문. 김병현은 당초 1일 등판 예정이었다. 김영민이 1일 선발로 나서면 김병현도 화요일로 밀리게 된다. 그런데 김 감독은 나이트와 벤헤켄에겐 5일 휴식-6일째 등판의 로테이션을 지켜주고 있다. 가장 좋은 투수가 가장 좋은 투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다. 김병현이 3일 등판하면 나이트와 벤헤켄도 하루씩 밀리게 되고, 나이트와 벤헤켄을 예정대로 등판시키면 김병현은 그만큼 등판이 미뤄지게 돼 투구 감각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김 감독은 "어떻게 해야하나"하고 고민을 하면서 덕아웃에서 일어서 버스로 향했다. 대구구장에 내리는 비가 김 감독의 고민을 말해주는 듯했다.
대구=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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