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펜투수에게 피홈런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LG의 임시 마무리 유원상이 흔들렸다. 1일 인천 SK전에서 그는 시즌 초반 보여줬던 강력한 모습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전에도 이런 모습이 보인 적이 있다. 바로 홈런을 맞은 앞선 2경기였다. 홈런만 맞으면 어김없이 풀이 죽었다.
불펜 첫 경험 유원상, 홈런만 맞으면 '멘붕' 왔다
유원상은 5-0으로 앞선 8회초 등판했다. 세이브 상황도 아니고 9회도 아니었기에 가장 믿을 만한 투수 유원상의 등판이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지만, 그만큼 LG가 처한 상황은 좋지 않았다. 추락을 거듭했던 6월과 달리 정상적인 7월 레이스를 선언한 만큼, 7월 첫 경기 승리는 중요했다.
하지만 유원상은 등판하자 마자 홈런 2방을 얻어맞았다. 선두타자 이호준에게 던진 4구째 144㎞짜리 직구가 빨랫줄처럼 날아가 우측 담장을 넘어갔다. 직구 위주의 승부였는데 모두 공이 높았다.
다음 타자 박정권은 더욱 영리했다. 마치 유원상의 패턴을 알고 있다는 듯 방망이를 돌렸다. 유원상은 초구에 몸쪽으로 슬라이더를 던졌다. 140㎞를 넘나드는 고속슬라이더는 올시즌 그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공이다. 박정권은 기다렸다는 듯이 잡아당겨 이호준과 같은 곳으로 타구를 보냈다.
백투백 홈런, 유원상에겐 올시즌 처음 있는 일이다. 피홈런은 4개째. 홈런을 허용한 이전 2경기에선 모두 패전투수가 됐다. 4월26일 잠실 넥센전서 0이닝 3실점, 6월12일 잠실 SK전서는 0이닝 4실점으로 무너졌다. 홈런 직후 강판된 것도 아니다. 각각 2점홈런, 솔로홈런을 허용했지만, 이후 아웃카운트를 잡지 못한 채 주자만 내보내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시쳇말로 '멘탈붕괴'라 부를 만하다.
피홈런, 중간계투에게는 치명적이다
홈런이 투수에게 주는 스트레스는 상당하다. 잘 던지다가도 '한 방'으로 전세가 뒤집힐 수 있다. 특히 젊은 투수들의 경우 홈런을 맞은 뒤 맥을 못 추며 제 풀에 무너지는 투수들도 많다.
선발투수보다 중간투수들의 경우 압박은 더 극심해진다. 가뜩이나 짧은 이닝을 책임지는데 그 와중에 맞은 홈런의 충격은 수십 배에 이른다. 팀 승리가 좌지우지되는 일이 다반사다.
개인 기록에도 영향이 크다. 팀 승리 외에 투수 개개인이 가장 신경 쓰는 수치인 평균자책점에도 선발에 비해 큰 영향을 미친다. 워낙 투구이닝이 적기에 0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중이다가도, 큰 것 한 방에 순식간에 4점, 5점대로 치솟을 수 있는 게 불펜투수의 숙명이다. '블론세이브 0'행진을 벌이던 봉중근이 지난달 22일 잠실 롯데전서 동점 투런포의 분노를 이기지 못한 이유도 이런 경험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원상 역시 2006년 데뷔 후 주로 선발투수로 뛰어왔다. 올시즌 성공적으로 필승계투조로 자리잡았다곤 하지만, 피홈런 후 패턴을 보면 당당하던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홈런을 맞은 뒤 직구 구위에 자신이 없어지자 슬슬 주무기인 슬라이더를 꺼내든다. 변화구로 조금씩 도망가는 피칭을 해보지만, 상대타자들한테 쉽게 간파당한다. 유인구에 방망이를 참아 볼넷을 골라나가거나, 노림수를 갖고 쳐내면 그만이다.
투수가 마운드에서 흔들릴 때, 상대타자나 벤치에서 이를 놓칠 리 없다. 점점 세밀해지는 현대 야구에서 정신력이 더 중요해진 이유다. 유원상 본인 또는 코칭스태프에서 이를 인지하고, 향후 패턴에 손을 볼 필요성이 있다. 다행인 건 유원상이 9회말에도 1사 만루 위기를 맞았지만 이겨냈다는 점이다.
유원상은 여전히 순수 불펜투수 중 가장 많은 51⅓이닝을 소화한 상태다. 투수구 관리는 기본이다. LG가 다시 치고 올라가기 위해선 '믿을맨' 유원상 카드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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