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본 없는 시트콤. MBC '무작정 패밀리'의 컨셉트가 처음 소개됐을 때만 해도 기대보단 걱정이 앞섰다. 파일럿으로 방송된 '주얼리 하우스'가 즉석 시트콤을 꾸몄다가 혹평만 들었던 사례가 있어서 더욱 그랬다. 이한위, 안문숙, 탁재훈, 유세윤 등 입담 좋기로 유명한 이들이 출연한다지만 애드리브만으로 시트콤을 이끌어간다는 건 무모한 시도로 비춰졌다. 그런데 회를 거듭하면서 뜻밖에도 "신선하다"는 시청자들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게시판에는 "새롭고 독특하다" "생각보다 재밌다" "점점 나아지는 것 같다"는 얘기들이 부쩍 늘었다.
'시추에이션 버라이어티'를 표방한 '무작정 패밀리'는 제작진이 제시한 설정을 바탕으로 출연자들이 애드리브와 즉흥 연기로 상황극을 이끌어간다. 1회에선 이혜영의 가수 재도전기가 펼쳐졌고, 2회에선 박규리가 성인영화에 출연하겠다고 선언해서 집안이 한바탕 뒤집어졌다. 1일 방송된 3회에선 출연진이 2개팀으로 나뉘어 가족노래를 만들었다. 이한위와 안문숙, 탁재훈과 이혜영 부부를 중심으로 유세윤, 차홍, 최웅, 박규리, 김소현이 아들딸로 활약하고 있다.
'무작정 패밀리'는 '연예인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출연진 개개인의 실제 캐릭터를 시트콤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래서 탁재훈은 '한때 잘나갔지만 지금은 아이돌 옆자리에 앉아 방송생활을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되고, 안문숙은 '카리스마로 가족을 휘어잡지만 밖에만 나가면 처녀인 양 행세한다'고 설정됐다. 어디까지가 실제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헷갈리는 바로 그 지점에서 웃음이 발생하는 구조다. 이혜영이 과거 가수로 활동하던 시절에 부족한 노래 실력 때문에 창피를 당했던 일화를 털어놓거나, '각시탈'에 출연 중인 최웅이 '각시탈'의 대사를 선보여도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할 때, 시청자들은 웃기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미묘한 지점에 놓인다. 좀 더 리얼리티가 강조되면 이혜영의 가수 도전기에 눈물을 보이던 안문숙처럼 시청자들도 뭉클해하게 되고, 최웅처럼 풍자가 강화되면 웃음보를 터뜨리게 된다. 리얼리티의 매력을 잘 포착해 요소요소에 배치한 제작진의 노림수가 빛나는 대목이다.
전체적인 상황은 김소현의 내레이션을 통해 제시되고 출연진은 그에 맞춰 상황극을 이끌어간다. 사전에 대략의 얼개는 짜여져 있지만, 내용을 채우는 건 출연진의 역량에 맡겨진다. 박규리가 자신이 출연하고 싶은 19금 성인영화에 대해 '전쟁 판타지'라는 기상천외한 설명을 한 것도 애드리브였고, 가족노래 만들기에서 노래 가사도 출연진의 애드리브로 짜여졌다. 가족노래 대결에서 우승한 팀에게 상금을 주라는 내레이션을 세번이나 반복해 들려주면서 이한위를 압박한 것 또한 제작진의 애드리브다. 이런 애드리브가 때론 무리수로 느껴지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실제에서 가져온 캐릭터의 힘이 그 빈틈을 메운다. 앞으로도 캐릭터가 더욱 선명해지고 그들간의 화학작용이 잘 일어난다면 더 색다른 재미를 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 의미에서 3회에 방송된 '가족노래 만들기'는 화학작용을 시험해볼 수 있는 효과적인 미션이었다.
카메오들의 출연도 소소한 재미를 보탠다. 1회엔 '위대한 탄생'과 '슈퍼스타K' 출신 가수들이 오디션 심사위원으로 '무작정 패밀리'를 찾았고, 2회엔 봉만대 감독이 박규리를 자신의 영화에 캐스팅하기 위해 가족을 설득했다. 실제 성인영화 연출 경력이 화려한 봉만대 감독은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며 큰 관심을 받았다. 3회에서도 장재인과 설운도가 출연했고, 4회엔 최란-이충희 부부가 '부부 솔루션'을 위해 출연할 예정이다.
'무작정 패밀리'의 촬영장에는 곳곳에 카메라만 설치됐을 뿐, 제작진의 개입은 최소화한다고 한다. 제작진은 별도로 마련된 상황실에서 카메라를 살펴보면서 적절한 타이밍에 상황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무작정 던져놓고 마는 게 아니라, 상당히 치밀한 계산이 밑바탕이 됐다는 얘기다. '무작정 패밀리'의 각본 없는 웃음이 더 많은 시청자들을 웃게 할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진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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