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클리어링에는 의외로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다.
3일 광주구장에서 9회에 KIA와 두산간 벤치클리어링이 발생했다. 두산 마무리투수 프록터가 2사후 타석에 나온 나지완에게 던진 초구가 머리 위로 향했다. 나지완이 앞으로 걸어나가려는 동작을 취했고 프록터도 뭔가를 얘기하며 맞대응했다. 양팀 벤치가 순식간에 텅 비었다.
빈볼의 유효기간
지난 5월말 경기였다. 당시 나지완이 두산전에서 9회에 프록터를 상대로 동점 3점홈런을 칠 뻔 했다. 타구가 잘 맞아나가며 뻗었고 나지완은 홈런이라고 판단, 두 팔을 높이 들면서 천천히 걸어나갔다. 하지만 타구는 펜스에 맞고 나왔고 뒤늦게 뛴 나지완은 단타에 그쳤다.
바로 그때 장면을 프록터가 새겨두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타자가 홈런을 쳤을 때도 베이스를 너무 천천히 돌면 상대 투수는 기분 나쁘게 생각한다.
2년 전쯤 이런 일이 있었다. 모 구단의 타자가 힘차게 잡아당긴 공이 파울 폴을 향해 날아갔다. 거리상으론 분명 홈런성 타구, 문제는 파울 폴 안쪽이냐 바깥쪽이냐가 문제였다. 그 타자는 전혀 뛸 생각을 않고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팔을 공중으로 뻗은 채 몸을 갸우뚱 하면서 타구를 바라봤다. 결과는 파울이었다. 이튿날 그 타자의 행동에 대해 상대편 코치와 선수들이 불쾌한 심정을 드러냈다. 경기 막판도 아니고 초반에 마운드 위의 투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결례'라는 것이다. 당시 "또 그러면 몸쪽으로 하나 넣을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물론 이같은 '비매너'에 대한 해석은 빈볼을 던지는 쪽과 당하는 쪽이 매번 다르다. 딱히 어느 한쪽을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모 구단의 코치는 "메이저리그에선 빈볼의 유효기간이 3시즌이라는 얘기도 있다. 까맣게 잊은 것 같은 사건까지 되살아나서 다음 시즌에 빈볼로 연결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투수가 절대 불리하다
빈볼 시비가 나오고 벤치클리어링으로 이어지면, 실은 투수에게 유리할 게 전혀 없다. 오히려 불리하다. 타자는 한타순이 돌 때까지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투수는 흥분한 상태에서 계속 공을 던져야한다.
밸런스가 흐트러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프록터도 이날 9회에 첫 두타자를 내야땅볼과 삼진으로 잘 잡았다. 하지만 세번째 타자인 나지완과 초구에 시비가 붙은 뒤 결국엔 볼넷을 내줬다. 후속타자에게도 안타를 허용, 2사 1,2루의 위기에 처했다. 그후 차일목을 삼진으로 처리하면서 세이브에 성공하긴 했지만, 꽤 긴박한 상황까지 갔다.
투수코치들은 "벤치클리어링이 벌어지면 일단 투수에게 무조건 흥분하지 말라고 계속 말한다. 상황이 종료된 뒤에도 투수는 계속 던질 때가 대부분이다"라고 말한다. 또하나, 일단 벤치클리어링이 벌어지면 "다 뛰어나가라"고 평소부터 선수들에게 강조한다.
다음날 선발투수? 예외 없다
몇년 전까지 국내프로야구에선 '벤치클리어링이 벌어져도 다음날 선발투수는 절대 참전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사실인 것처럼 여겨졌다. 모두가 뛰쳐나가지만, 이튿날 선발투수는 보호돼야 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몇몇 외국인투수들에게 물어보니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과거 삼성에서 뛴 외국인투수는 "메이저리그에선 다음날 선발투수라고 해서 벤치클리어링에서 물러나는 일은 없다. 동료를 보호하기 위해 모두가 나간다"고 말했다.
우스운 사례도 있었다. 과거 모 타자는 "대주자로 교체된 뒤에 갑자기 배가 너무 아파서 화장실에 갔었다. 그런데 바깥이 소란스러웠다. 놀라서 허둥지둥 나가보니 벤치클리어링이 벌어졌고 이미 상황이 종료되기 직전이었다. 마치 뒤에 빠진 것처럼 보여서 정말 창피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프록터-나지완 케이스는 직접 충돌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분위기 자체는 꽤 험악했다. 반면 아주 가벼운 분위기의 벤치클리어링도 있다. 이때 양팀 베테랑들은 마운드 근처에서 대치했을 때 "요새 원정팀 숙소 근방에 어떤 음식이 맛있냐"면서 농담을 주고받을 때도 있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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