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세상을 떠난 부산 아이파크 수비수 고 정민형의 빈소가 차려진 경기도 의정부 백병원에서 의외의 인물들을 마주쳤다.
이정호(31) 홍성요(33) 김응진(27), 지난해 K-리그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돼 실형을 구형받은 직후 그라운드에서 퇴출된 부산 아이파크 출신 수비수 3명이었다.
수비라인에서 동고동락했던 후배가 마지막 떠나는 길을 함께 했다. 비보를 듣자마자 가장 먼저 빈소로 달려왔다. 가장 오래도록 자리를 지켰다.
축구와 근황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라운드를 열망하던 선수의 안타까운 자살, 승부조작 선수들의 불확실한 미래… 이야기는 자주 끊겼고 분위기는 침통했다. 동석한 축구계 관계자가 최근 승부조작 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이 '확정'된 사실을 귀띔했다. 이들은 지난 1월 창원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승부조작 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았다. 검찰이 항소했다. 지난달 1일 2심 재판에서도 이들의 승부조작에 대해 혐의점을 찾아낼 수 없었다. 비디오 분석 결과 정상적인 플레이로 판정됐다. 금품수수 혐의는 유죄였다. 각각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브로커의 돈을 받았으되, 승부조작에는 가담하지 않았다는 결론이다.
이정호 홍성요는 2010년 10월 27일 수원전을 앞두고 후배의 부탁을 받았다. 부산, 대전, 제주 관련 승부조작의 '몸통', 선수 출신 브로커였다. 당시에는 전후사정을 알지 못했다. 그저 "도와주지 않으면 조폭한테 죽는다"며 간절히 매달리는 후배를 차마 외면하지 못했다. 그러나 막상 그라운드에 들어서니 져주는 경기를 도저히 할 수가 없더라고 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성실히 뛰었다. 이정호는 이날 강력한 슈팅으로 수원 골문을 위협했다. 김두현(당시 수원)에게 1골을 내줬지만 누가 봐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후배 브로커가 구속된 직후 프로축구연맹에 돈을 받은 사실을 자진신고했다.
"다시 그런 일이 생긴다면 단호히 거절할 것같다. 망설이지도 않을 것같다. 그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왜 그랬는지…." 회한이 가득했다. 승부조작 연루 때는 세상의 따가운 시선이 집중됐지만, 무죄판결에는 관심이 없다. 승부조작은 무죄지만 어쨌거나 금품을 받은 건 사실이다. 완전히 결백하기엔 그 부분이 마음에 걸린다. "무엇보다 팬들이 저희를 받아들여주실 시간이 필요하겠죠. 포기하지 않고 자숙하면서 기다릴 겁니다. 봉사도 열심히 하고요."
이정호는 꾸준히 개인훈련을 통해 몸을 만들어왔다고 했다. 프로축구연맹에서 진행하는 사회봉사활동에도 열심히 참가하고 있다. 홍성요는 고등학교 은사의 일을 돕고 있었다. 고 정민형의 동기인 김응진 역시 아직 나이가 어린 만큼 축구장 주위를 맴돌고 있다. 그라운드 복귀의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고 했다. 정민형의 빈소에서 누구보다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한때 당연한 줄 알고 뛰었던 그라운드였다. 한순간의 실수는 삶의 모든것을 바꿔놓았다. 단 한번만이라도 다시 설 수만 있다면 좋아 미칠 것같은, 머나먼 '꿈의 그라운드'다.
세 수비수의 무죄판결 소식에 부산 아이파크 팬은 홈페이지를 통해 환영의 의사를 표하고 있다. '이 선수들은 정말 열심히 뛰었던 걸로 기억됨. 우리선수들 복귀한다면 전 찬성! 그 조작의심 경기를 아무리 봐도 정말 일부러 진 것 같지 않았는데' '저 세선수들 경기장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뛴 선수들입니다. 법원의 무죄판결을 존중합니다'라는 댓글로 반가움을 표했다.
승부조작에 연루돼 그라운드에서 퇴출된 선수 47명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가담 정도, 죄질, 사례가 모두 제각각이다. '일벌백계'하자는 의미에서 전원 영구제명의 철퇴를 가했다. 1년 전, K-리그의 근간을 흔들며, 수없는 희생과 죽음을 불렀던 희대의 승부조작 사건이었다. 후폭풍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죄가는 치러져야 한다. 원칙이 흔들려서도 안된다. 섣부른 온정주의는 위험하다. 그러나 승부조작 무죄판결은 새 국면이다. 이들에 대한 연맹의 정확한 판단이 필요하다. 또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 대문을 닫아도, 창문은 열어놓는 법이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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