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석 달 반, 나의 프로야구 첫 시즌 전반기를 되돌아보니 고진감래(苦盡甘來·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는 의미로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온다는 뜻)라는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시즌 개막전을 앞두고 누구도 내가 주전이 될 거라는 생각을 못 했을 텐데, 나 또한 그랬다. 솔직히 백업으로 1군에 남는 게 올해 목표였다. 그런데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없이 갑자기 기회가 찾아와 당황스러웠다. 4월 7일 개막전을 하루 앞두고, 주전 2루수인 (김)민성이 형이 다치는 바람에 경기에 나서게 돼 처음에는 정신이 없었다. 지금도 두산과의 개막전 첫 타석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9번-2루수로 선발 출전해 2회 첫 타석에서 두산 선발 니퍼트를 상대로 우익수 플라이를 기록했다. 2008년 신고선수로 LG에 입단해 그해 7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타로 나서 삼진을 당했는데, 그날 이후 3년 9개월 만의 정규시즌 1군 경기 타격이었다. 스프링캠프 때 연습경기, 시범경기 때 니퍼트 공을 때려봤기 때문에 생소한 느낌은 없었다. 그러나 그날 잠실구장으로 가는 길에 굉장히 떨고 긴장했다. 그런데 막상 경기장에 도착하니 긴장감이 좀 풀렸던 것 같다. 시범경기랑 크게 다를 게 없으니 편하게 하라는 선배들의 많이 도움이 된 것 같다.
시즌 초반 스트레스가 심했다. 2군에 내려가지 않으려면 빨리 뭔가를 보여줘야했다. 실력이 없으면 바로 자리를 내줘야하는 게 프로 아닌가. 누군가 내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하루라도 빨리 자리를 잡고 싶었다. 이런 압박감 때문에 성급한 플레이가 자주 나왔다.
득점 찬스에서 무기력하게 물러나 아쉬운 적이 많았지만, 보내기 번트에서 실패했을 때 정말 내 자신이 실망스러웠고, 화도 많이 났다. 목동 KIA전으로 기억한다. 상대 투수가 윤석민 선배였는데, 6회 선두타자가 2루타를 치고 나갔다. 우리가 1-2로 뒤지고 있었고, 상대 투수의 공이 워낙 좋아 보내기 번트는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런데 번트를 확실히 대지 못해 포수 플라이로 아웃됐고, 그날 우리는 패했다.(4월 7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KIA전에서 넥센은 1대2로 패했고, KIA 선발 윤석민은 9이닝 1실점 완투승을 거뒀다) 내가 번트만 제대로 댔어도 상황이 달라질 수 있었다. 안타, 홈런도 중요하지만, 팀에서 나같은 스타일의 선수에게 원하는 게 번트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전지훈련 기간에 그렇게 열심히 준비를 했는데, 막상 경기에서 실수를 하니 너무 화가 났다. 전반기 최악의 날이었다.
시즌 초 부진할 때는 이러다가 2군으로 내려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5월 29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SK전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경기가 될 것 같다. 연장 10회말 2-2 동점 상황이었다. 무사 2,3루. 경기장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때 타석에 들어가 상대 투수 정우람 선배로부터 끝내기 우전안타를 때렸다. 앞서 결승타도 몇 번 쳤봤지만 내 손으로 경기를 끝냈다는 쾌감에 전율했다. 나의 프로 첫 끝내기 안타였다. 덕분에 턱돌이로부터 물벼락을 굉장히 많이 맞았다. 그날 정말 축하 전화, 문자를 100통 정도 받은 것 같다.
주위에서 이제는 해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런데 해볼만하다는 것과 자신감은 약간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야구에서 최고의 무기는 자신감이다. 솔직히 시즌을 시작할 때부터 내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있었다. 하지만 지금 해볼만하다는 이야기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내게 부족한 점, 보완야할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4월 한 달이 지나고 20경기 정도를 경험해 보니 욕심을 버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심초사하고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야구에 매달렸는데, 성적은 기대 이하였다. 이렇게 해도 안 되고 저렇게 해도 안된다면, 차라리 부담감을 조금 내려놓고 마음 편하게 열심히 해보자고 생각을 갖게 됐다.
프로야구 넥센과 SK의 경기가 5월 29일 목동야구장에서 열렸다. 연장 10회말 서건창의 끝내기 안타로 승리를 거둔 넥센. 경기 종료후 인터뷰를 하는 서건창에게 턱돌이가 물폭탄 세례를 주고 있다. 목동=전준엽 기자 noodle@sportschosun.com
전반기 팬들로부터 과분한 칭찬도 많이 들었고, 감독 추천선수로 올스타전까지 출전하는 영광까지 누리게 됐다. 전반기 여러가지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경기에서 이긴 후 덕아웃으로 들어왔을 때 코칭스태프, 선배들로부터 "수고했다. 고생했어"라는 칭찬을 들을 때 가장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요즘 종종 신인왕 얘기를 듣게 된다. 이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내가 목표했던 것보다 잘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지금은 신인왕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닌 것 같다. 개인성적에 신경을 안 쓰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정말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우선은 우리 팀이 자꾸자꾸 이겨 4강을 경험해보고 싶다. 그렇게 팀 성적이 좋고 시즌 막판에도 성적이 괜찮으면 그때 욕심을 낼 수 있겠으나 지금은 아닌 것 같다.
시즌 초반에는 기록, 숫자에 신경을 많이 썼다. 그런데 숫자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는 게 플러스보다 마이너스라는 걸 알게 됐다. 대략적인 건 알고 있지만 지금 내 타율, 안타수를 정확하게 모른다.
지금 시점의 나에게 '목표했던 것 보다 훨씬 잘하고 있구나'라고 한번 웃어주고 싶다. 자만을 한다거나, 더 욕심을 부린다거나 그러지 않고 항상 초심을 유지하고 싶다. 후반기 우리 팀이 4강에 오르는데 주연은 못되더라도 없어서는 안 될 선수가 되고 싶다. 서건창·넥센 히어로즈 내야수
김시진 넥센 히어로즈 감독은 지난 겨울 입단 테스트를 거쳐 합류한 서건창(23)을 떠올리며 "다른 선수와는 확실히 달랐다. 눈에 야구에 대한 절실함이 가득 차 있었다"고 했다. 광주일고 시절 야구 잘 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던 서건창은 졸업을 앞두고 고려대와 프로를 놓고 고민하다가 프로행을 결정했다. 다른 누구의 조언 없이 스스로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그런데 신인 드래프트에서 어느 팀도 그를 찍지 않았다. 롯데전을 앞두고 있던 18일 오후 2시 목동구장 홈팀 귀빈실에서 마주한 서건창은 "건방진 이야기같지만, 그때는 프로에 가도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했다. 2008년 신고선수로 LG 유니폼을 입은 서건창은 그해 1경기에 대타로 나선 게 기록의 전부였다. 시즌이 끝나고 방출돼 현역병으로 입대했다. 지난 겨울 입단 테스를 거쳐 넥센에 입단한 서건창은 전반기 74경기에 출전해 타율 3할(247타수 74안타), 28타점, 15도루를 기록했다. 누구도 기대하지 못했던 성적으로 벌써부터 유력한 신인왕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전반기 넥센 돌풍의 당당한 주역이었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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