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 22일 한국은 2002년 한-일월드컵 8강전서 유럽의 강호 스페인을 맞았다. 120분간의 혈투 끝에 득점없이 경기를 마쳤다. 양 팀은 '러시안 룰렛'이라 불리는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선축한 한국은 황선홍-박지성-설기현-안정환이 차례로 골을 성공시켰다. 마찬가지로 3번째 키커까지 모두 성공시켰던 스페인은 네번째 키커로 호아킨을 내세웠다. 숨막히는 순간 이운재가 호아킨의 슈팅을 막아냈다. 한국은 마지막 키커로 나선 홍명보가 골을 성공시키며 사상 첫 월드컵 4강 고지에 올랐다. 골을 성공시킨 후 언제나 무뚝뚝하던 홍명보의 환한 웃음은 여전히 팬들의 뇌리에 남아 있다.
10년 후 역사는 되풀이 됐다. 무대는 런던이었다. 홍명보호는 5일(한국시각) 영국 카디프 밀레니엄스타디움에서 영국과 2012년 런던올림픽 8강전을 치렀다. 객관적 평가에서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압박을 바탕으로 유럽의 강호를 압도하던 것은 10년 전과 똑같았다. 이탈리아와의 16강 접전 후 경기를 가졌던 그때나, 단 이틀만 쉬고 경기를 치르는 지금이나 체력저하에 시달린 것도 같았다. 그러나 모두 마지막까지 달리고 또 달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열심히 뛰었다. 상대는 태극전사의 강인함에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120분간의 싸움에도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그리고 찾아온 승부차기. 영국이 선축을 했다. 첫 번째 키커로 나선 애런 램지(아스널)의 오른발슛이 그대로 골망 안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리드를 잡았다. 한국은 첫 번째 키커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이 영국 골키퍼 잭 버틀랜드(버밍엄)를 완전히 속이는 슛으로 골망을 갈랐다. 두 번째 키커로 나선 톰 클레버리(맨유)가 슛을 성공시킨 가운데, 백성동(주빌로 이와타)의 슛도 골로 연결되면서 팽팽한 흐름이 이어졌다. 뒤이어 나선 크레이그 도슨(웨스트브로미치)과 황석호(히로시마), 라이언 긱스(맨유), 박종우(부산)도 나란히 기회를 성공시켰다.
다섯번째 키커 맞대결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영국의 다섯 번째 키커 다니엘 스터리지(첼시)가 킥을 위해 달려오던 중 주춤했다. 호아킨의 모습과 같았다. 그의 슛은 이범영의 손에 걸렸다. 마지막 키커로 나선 기성용(셀틱)이 시원하게 골망을 가르며 한국 축구는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4강행에 성공했다.
스페인전의 재연이었다. 스페인전서 마지막 킥을 성공시킨 후 환호하던 홍명보는 10년 뒤 말끔하게 정장을 입고 제자의 승리에 환호했다. 물론 기쁨의 크기는 우열을 가릴 수 없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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