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극장에 사투리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MBC '골든타임', KBS2 '해운대 연인들', tvN '응답하라 1997' 등 부산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들이 유례없이 한꺼번에 쏟아지다 보니, 배우들의 사투리 실력에 따라 드라마의 희비도 엇갈리고 있다. 심지어 이 드라마들은 모두 같은 날 편성돼 수시로 '비교 평가'의 화살을 맞고 있다.
부산 올로케이션으로 촬영 중인 MBC '골든타임'에선 이성민과 송선미가 자연스러운 사투리로 시선을 끌었다. 경북 영주 출신으로 대구에서 10년간 극단 생활을 했던 이성민은 경북 사투리를, 부산 출신 송선미는 고향말인 부산 사투리를 쓴다. 이들의 억양은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정도로 높낮이가 크지 않은 편이라 억센 경상도 사투리를 떠올린 시청자들에게 의아함을 자아내기도 했는데, 사실은 그 말투가 실제 현지어에 더 가깝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다. 이성민의 경우, 경북 사투리로 전문 의학용어를 구사해야 하는 데다 수술실 장면에서는 마스크까지 쓰고 있어서, 방송 초반엔 시청자들이 대사를 이해하는 데 다소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회를 거듭하면서 이성민의 사투리는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의사 최인혁의 인간미와 카리스마를 전달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응답하라 1997'은 캐스팅 단계부터 사투리 대사를 고려해 아예 경상도 출신 '네이티브 스피커'를 최우선 순위로 발탁했다. 정은지, 호야, 이시언, 이일화는 부산 출신이고, 서인국은 울산이 고향이다. 실제인지 연기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럽고 맛깔스러운 사투리 덕분에 이들은 '연기신동'이란 얘기까지 듣고 있다. 서울 출신인 신소율에겐 정은지가 사투리 선생님이다. 이 드라마의 관계자는 "주조연 배우의 80%가 경상도 출신이라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익히고 배우게 되는 부분도 많다"며 "신소율도 사투리를 완전히 매끄럽게 하지는 못하지만 자기만의 스타일로 자신감 있게 대사를 소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해운대 연인들'의 사투리는 연일 입방아에 올랐다. '부산 토박이' 고소라 캐릭터를 연기하는 조여정의 사투리가 어설프게 들렸던 것. 사실성보다는 재치있는 설정과 캐릭터로 승부하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라는 점을 고려하면 배우들의 사투리 연기에 대한 평가가 다소 가혹한 측면이 있다. 앞서 방송을 시작한 '골든타임'과 '응답하라 1997'의 '네이티브 사투리'에 길들여진 시청자들의 까다로운 안목도 '해운대 연인들'에겐 불리한 환경이다. 이 드라마에 출연하는 김혜은은 제작발표회에서 "나도 부산 출신이지만 사투리 연기가 어렵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어느 작품이든 사투리로 승부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좀 어설프더라도 연기력으로 극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영화 '공모자들'의 임창정은 낯선 부산 사투리를 배우기 위해 1개월간 부산으로 '유학'을 갔다고 한다. 평상시에도 부산 출신 지인들과 함께 생활하며 사투리를 입에 달고 살았다. KBS2 '드림하이'에서 "이 농약같은 가시나"란 명대사를 남긴 김수현이 드라마를 끝낸 후에도 무의식적으로 사투리로 말했다는 건 유명한 얘기다.
'응답하라 1997'의 성동일은 극 중에서 유일하게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한다. 리드미컬한 경상도 사투리와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의 대비는 극의 재미를 더하는 요소다. 네이티브 뺨치는 성동일의 전라도 사투리는 부단한 노력의 결과다. 사실 성동일은 인천 출신이다. 이제 배우들도 '제2외국어'처럼 능숙하게 구사하는 사투리 하나쯤은 갖춰놓아야 하는 시대가 된 듯하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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