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패에 빠지면서 모두가 세 형들만 얘기하더라. 솔직히 자존심이 상했다."
KIA 나지완하면 생각나는 것은 역시 2009년 한국시리즈 최종 7차전에서 나온 끝내기 홈런이다. 팔꿈치 통증에도 투혼을 보이던 채병용의 실투 하나를 놓치지 않고 걷어 올려 담장을 넘겼다.
나지완은 팀을 우승으로 이끈 이 홈런으로 한국시리즈 MVP의 감격까지 누렸다. 데뷔 2년차였던 그 해, 나지완은 정규시즌에도 23홈런을 터뜨리며 남다른 장타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이후 나지완의 성장세는 보이지 않았다. 2010년 15홈런을 날렸지만, 타율이 2할1푼5리에 머물렀다. 파워는 있지만 정교함이 부족한 타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지난해엔 타율을 3할2리까지 끌어올리고 18홈런을 날렸지만, 시즌 초반 부상으로 인해 85경기 출전에 그친 게 아쉬웠다.
올시즌 KIA는 이른바 'L-C-K포(이범호 최희섭 김상현)'이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면서 '홈런 가뭄'에 시달렸다. 8개 구단 중 최악의 장타력이었다. 팀 홈런은 최하위였다. 한때 넥센 강정호가 친 홈런보다 적은 팀 홈런을 기록하며 '김기아'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KIA엔 장타력을 가진 나지완의 활약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하지만 나지완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잘 치다가도, 좋은 타격감을 오래 이어가진 못했다.
나지완 역시 이런 상황이 싫었다. 지난 11일 광주 롯데전부터 연패가 시작되자 자책감은 더욱 커졌다. 지난 2010년 팀 최다인 16연패에 빠졌을 때의 아픈 기억도 떠올랐다. 7연패에 빠진 동안 KIA가 친 홈런은 단 2개. 김선빈과 나지완이 홈런을 1개씩 쳤다. 나지완이 홈런을 친 경기에서도 KIA는 승리하지 못했다.
22일 광주구장. 나지완은 개인 통산 세번째 연타석 홈런으로 팀을 연패의 수렁에서 구출해냈다. 0-2로 뒤진 4회말 추격의 솔로홈런, 그리고 4-4 동점이던 6회말 결승 솔로포를 날렸다. 연패 기간 중엔 별것 아니었을 2점이었지만, 이날 나지완이 만들어낸 2점은 특별했다. 조영훈의 3점홈런까지 더해 홈런으로만 이날의 점수를 모두 채웠다. 한 경기 홈런 3개는 올시즌 처음이었다.
경기 후 나지완은 홀가분한 모습이었다. "정말 승리가 간절했다"는 한마디로 그간의 마음고생을 털어놓았다. 나지완이 승리에 목말랐던 건 단순히 연패에 빠져서가 아니었다. L-C-K포가 없는 상황에서 중심타선에 배치됐는데 그 뒤로 승리가 없으니 모든 게 자신의 책임 같았다.
나지완은 "연패 기간 동안 모두가 세 형들이 없어서 그렇다는 말을 했다. 우리 팀의 주축 선수 3명이나 빠져있으니 그런 소릴 듣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솔직히 정말 속상했다"고 고백했다. 모두가 이범호 최희섭 김상현의 이름만 얘기하니, 경기에 나서고 있는 선수들은 더욱 주눅들 수 밖에 없었다.
나지완은 "우리가 못 친것이지만, 자존심이 상했다. 2010년 16연패를 당할 때도 내가 클린업트리오에 있었다. 2년째 느끼는 그 기분이 싫었다. 간절했다. 내 손으로 연패를 끊고 싶었다"고 말했다.
'큰 것 한 방을 날리자'는 생각 뿐이었지만, 타석에서 욕심을 부리거나 조급해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거센 비를 뚫고 때려낸 첫 홈런 땐 바깥쪽 직구를 '툭' 밀어쳤다. 나지완이 가진 고유의 배팅파워를 보여준 장면이었다. 빗속에서도 타구는 120m나 날아갔다.
홈런 하나가 나오니, 두번째는 쉬웠다. 마치 2009년 한국시리즈를 연상케 하는 홈런이 나왔다. LG 두번째 투수 임찬규의 140㎞짜리 직구가 높게 들어오자 지체없이 방망이를 돌렸다. 초구에 변화구를 생각했는데 직구가 들어와서 순간적으로 상대 볼배합이 바뀐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조건 직구라는 생각에 방망이를 빠르게 돌렸다. 정확한 판단이었다. 이번엔 비거리가 125m였다. 잠실구장 펜스 상단에 꽂혔던 그때 그 홈런 같았다.
나지완은 "연승을 하면서 나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좀 안일해졌던 것 같다. (연패가 시작된) 롯데전부터 말리기 시작했다"며 아쉬워했다.
7연패에 빠지면서 순위는 4위에서 6위까지 떨어졌다. 22일 현재 4위 두산과는 3.5게임차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나지완은 물론, KIA 선수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동안 '태업한다'는 억울한 오해까지 받았기에 마음은 더욱 굳건했다. 나지완은 "아직 4강을 포기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이를 악물었다.
광주=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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