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만에 롯데의 역사가 바뀌었다. 94년 박동희가 31세이브를 기록한 후 '뒷문이 불안한 팀'으로 낙인 찍혀온 롯데. 지난해 혜성처럼 나타나 20세이브를 거두며 새로운 롯데의 마무리가 된 김사율이 올시즌 대형사고를 치고 말았다. 8일 부산 한화전에서 시즌 32번째 세이브를 올리며 롯데 역사상 개인 최다 세이브 기록을 경신했다. 그리고 신기록을 넘어 롯데에서는 상상도 하기 힘들다던 40세이브 목표를 향해 달려나간다.
"나는 야구를 못해서 마무리 투수가 됐다."
경남상고를 졸업한 김사율은 99년 2차 1라운드 1순위로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 받았던 계약금이 2억3000만원. 고교 선수임에도 당시 부산에서 김사율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 그만큼 많은 팬들의 많은 기대를 모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1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며 김사율의 이름은 팬들의 뇌리에서 점점 잊혀졌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전국 무대를 호령했던 고교 최고의 에이스. 그가 13년 만에 마무리 투수로 다시 나타났다. 사실 김사율이 순조롭게 야구를 했다면 마무리를 맡을 일은 없었다. 김사율은 "내가 마무리 투수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밝혔다.
김사율은 "오승환(삼성), 손승락(넥센) 등 다른 선수들처럼 빠른 공을 갖고, 강심장이어서 마무리가 된 게 아니다. 선발로 던지고 싶었지만 10년이 넘게 내 자리는 없었다"며 "그렇다고 야구를 포기할 수는 없지 않나. 지난해 어렵게 불펜 투수로 기회를 잡았다. 그리고 운이 좋게 마무리 보직을 받게 됐다. 나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나는 야구를 못해 마무리 투수가 됐다"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마무리 2년차에 접어들며 이제는 마무리 자리가 자신에게 딱 맞는 보직이 됐다. 김사율은 "내 강점이 다른 선수들에 비해 회복력이 조금 더 빠르다는 것이다. 매순간 집중해야 하는데 꼼꼼하고 차분한 내 성격과도 잘 맞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오승환, 손승락. 모두 나보다 뛰어난 투수들."
김사율 본인도 인정한다. 지난해와 비교해 크게 달라진게 없다. "구속, 구종 등 모두 똑같다. 기술적, 체력적인 부분도 전혀 변한게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확 달라진 모습이다. 사실 지난 시즌에는 20세이브를 올리면서도 불안한 모습을 많이 노출했다. 구위로 상대를 윽박지르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 타자들이 쉽사리 겁을 먹지 않았다. 하지만 올시즌은 보는 사람의 마음이 편해질 정도다. 김사율이 등판하면 1이닝은 안정적으로 막아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 김사율은 "지난해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며 "올해는 자신감과 여유가 생겼다. '맞아도 단타'라는 생각으로 편하게 공을 던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투수에게서 여유가 보이니 타자가 수싸움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뜻. 최근 김사율의 투구를 보면 초구 스트라이크 비율이 매우 높다. 구속이 빠르지는 않지만 직구, 커브 등 원하는 공을 원하는 곳에 정확히 꽂아 넣는다.
마운드 위에서는 여유가 생겼지만 아직 자신이 갈 길은 멀다고 한다. 김사율은 "눈에 보이는 성적으로는 내가 위에 설 수도 있다. 하지만 오승환, 손승락, 정우람(SK) 등과 비교하면 나는 한참 모자라는 투수다. 아직도 이 선수들을 보고 배운다는 마음가짐으로 경기에 임하고 있다"며 "세이브 개수는 중요치 않다. 1점차 상황에서 8회에 일찌감치 위기가 찾아와도 나를 투입하면 막아낼 수 있다는 신뢰감을 주는 것이 내 목표"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TV에 나오는 아빠 땀 닦아주는 딸은 나의 힘.
김사율은 2009년 1세 연하의 신부 권연임씨(32)와 결혼식을 올렸다. 김사율은 "2007년 군 전역 후 만년 유망주 꼬리표를 떼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하지만 쉽게 기회를 잡지 못했다"며 "특히 로이스터 감독님 부임 후 팀 성적이 좋아지자 더욱 조급해졌다. 나는 롯데가 좋았다. 하지만 처음으로 '야구를 더 하려면 다른 팀을 알아봐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했었다"고 고백했다.
이 때 힘들어하는 김사율을 잡아준 사람이 아내가 된 권씨였다. 조용한 성격의 김사율과는 정반대로 아내는 활달할 성격을 가졌다. 김사율은 "정말 친구같은 아내다. 집에 들어가면 야구에 대한 생각이 들지 않게 나를 즐겁게 해주려 노력해줬다. 아내의 내조가 있어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며 고마워했다.
4살 된 붕어빵 딸 효주도 김사율이 더욱더 힘을 내게 한다. 이제 막 아빠가 야구선수라는 사실을 안 효주는 아빠가 TV에 나오면 뚫어져라 TV 브라운관을 쳐다본다. 김사율은 경기 중 땀을 많이 흘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모습을 본 효주는 "우리 아빠 땀 많이 흘린다. 내가 닦아줘야지"라며 수건을 들고가 TV 브라운관을 계속해서 닦는다고. 이 얘기를 들려주던 김사율은 마음이 흐뭇해졌는지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띄었다.
부산=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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