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자니 못 믿겠고, 안 쓰자니 내일이 두렵고'
15일 인천 문학구장. 5-3으로 앞서던 KIA의 선동열 감독은 7회말 수비가 시작되자 투수를 바꾼다. 이전까지 108개의 공을 던져 5안타 3볼넷 4삼진으로 3실점하던 외국인 선발 소사를 내리고, 2년차 우완투수 한승혁을 등판시켰다. 소사가 앞선 6회말에 구위가 떨어지면서 집중공략을 당해 2실점을 한 탓도 있지만, 또 다른 면으로는 한승혁에게 기회를 제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해 입단한 한승혁은 KIA의 미래다. 선 감독은 최근 "한승혁을 마무리로 기용하며 시험해보겠다"고 말한 바 있다. 마침 이날 팀의 마무리였던 베테랑 최향남을 2군으로 내려보내기도 했다. 올해 포스트시즌 진출이 사실상 좌절된 이후 선 감독은 팀의 미래를 위한 투자와 시험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한승혁의 기용은 역전패를 만들어내고 말았다. 한승혁은 이닝이 시작하자마자 두 타자를 각각 삼진과 1루수 뜬공으로 잡아내며 가능성을 보이더니 이후 갑자기 무너졌다. 3연속 안타와 볼넷으로 1실점한 뒤 2사 만루에서 강판됐다. 이어 등판한 좌완 진해수가 SK 대타 이재원에게 만루포를 얻어맞아 결국 역전을 허용했다. 진해수 역시 KIA의 좌완 기대주 중 하나다. KIA의 기대주들이 연이어 무너지면서 결국 선 감독의 시험은 실패로 돌아갔다.
감독들의 딜레마, 성적과 육성
그렇다고 해서 선 감독의 기용법을 비난할 수는 없다. 현재 KIA의 입장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감독들은 늘 두 가지 주요 과제를 떠안고 있다. 하나는 그해의 성적, 그리고 다른 하나는 미래를 위한 투자 즉 선수 육성이다. 두 과제의 가치는 동등하다. 절대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딜레마는 곧 여기에서 출발한다.
해당 시즌의 성적을 위한다면 경험 많고, 실력이 검증된 선수를 써야 하는게 맞다. 검증되지 않은 신인 혹은 유망주들은 일종의 복권과 같아서 제대로 터지면 기대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지만, 그 확률이 매우 낮다. 이렇게 불규칙적인 변수가 많은 선수들은 팀의 기본전력 계산에서 빼야 한다. 6개월여에 이르는 긴 시즌 동안 133경기를 힘있게 이끌어가려는 사령탑이라면 팀의 기본전력을 명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변수들은 일단 제외해놓고 본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하지만, 신인과 유망주의 발굴과 육성 또한 엄연히 감독의 과제다. 늘 기존의 선수들만으로 팀을 운영하다보면 '노쇠화'와 '정체화'라는 한계상황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신인이나 유망주들을 또 써야 한다. 비록 그런 선수들을 기용해서 팀이 패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이는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로 여겨야 한다. 이래저래 늘 감독들은 '성적'과 '육성'이라는 두 과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선 감독의 15일 투수 운용도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2점차의 타이트한 리드 상황에 유망주 투수들을 기용해 어떤 식으로 이기는 흐름의 경기를 끝내는 지 체험해볼 수 있도록 한 배려다. 비록 결과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는 한승혁이나 진해수 본인들에게는 어떤 경험보다 값질 수 있다.
문제는 한승혁이나 진해수 본인들이 이날의 실패로 인해 트라우마나 좌절감을 갖게되는 경우다. 패배의 경험이 성장을 위한 값진 밑거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퇴보의 단초가 되는 경우다.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이 코칭스태프의 가르침이다. 선 감독이나 이강철 투수코치의 역할이 바로 이런 면에서 더욱 중요해진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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