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축구인생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풍운아'라는 단어만큼 어울리는게 없다. 22일 인천과의 경기에서 감격의 데뷔골을 넣은 김병석(27·대전) 이야기다.
김병석은 유명한 선수는 아니었다. 흔한 청소년대표팀에도 발탁된 적이 없다. 바지런한 플레이를 인정받아 고교상비군과 고교학생선수권 대표로 선발된게 전부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해외 진출을 하게되며 그의 축구인생은 180도 바뀌었다. 본인이 '역마살이 낀것 같다'고 웃을 정도로 외국을 돌아다녔다. 그의 커리어에는 무려 4개국의 팀 이름이 적혀있다.
김병석은 2007년 입단 테스트를 통해 포르투갈 1부리그 소속의 빅토리아 세투발에 입단했다. 숭실대에서 김병석의 유럽진출 소식을 듣고 놀랄 정도로 그야말로 '깜짝 이적'이었다. 김병석은 숭실대에서도 확실한 주전보다는 조커로 기용되던 선수였다. 김병석은 감독의 총애 속에 착실히 포르투갈 무대에 적응했다. 입단하자마자 11경기에 나서 1골을 넣었다. 팀이 강등권을 탈출하는데 일조하며 많은 기대를 모았다. 김병석은 "나도 빅리그에서 뛸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했을 정도로 꿈 같은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감독이 바뀌고 난 뒤 그의 출전 횟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몸상태는 나쁘지 않았지만 계속된 벤치신세에 팀을 떠나기로 했다. 두번째 무대는 일본이었다.
2009년 J-리그로 승격한 몬테디오 야마가타로 이적했다. 이적 첫해는 나쁘지 않았다. 15경기에 나서 2골을 넣었다. 문제는 역시 두번째 해였다. 감독과 불화가 생겨 출전기회를 거의 잡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부상까지 이어졌다. 실의에 빠져 있을때쯤 사간 도스의 윤정환 감독이 손을 내밀었다. 2011년 사간 도스의 유니폼을 입은 김병석은 윤 감독의 세심한 배려속에 점차 기량을 회복했다. 지금 아내도 이 무렵 만났다. 마음이 안정되자 17경기에서 4골을 넣는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계속된 외국생활에 점점 지쳐갔다.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마음을 먹었다. 휴식을 취하고 팀을 알아보던 중 그의 새로운 행선지가 결정됐다.
사우디였다. 본인도 어떻게 해서 이적이 됐는지 모를 정도로 급작스러운 결정이었다. 해외라면 쉽게 적응했던 그에게도 사우디는 힘든 무대였다. 기후, 문화 모든게 낯설었다. 경기력도 잘 발휘가 되지 않았다. 계약기간이 끝나자마자 한국으로 돌아왔다. 어떻게든 K-리그에서 뛰겠다고 결심했다. 광주가 그에게 관심을 보였다. 테스트도 성실히 받았고, 몸상태도 괜찮았다. 그런데 계약 단계에서 무산됐다. 고개를 숙이던 그를 일으킨 것이 대전이었다. 김병석을 눈여겨 보던 유상철 감독이 광주와 계약이 실패하자마자 바로 낚아챘다.
김병석은 빠르게 팀에 적응했다. 한국 선수들과 함께 지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일본과 사우디에서 함께 고생한 아내가 너무 좋아한단다. 유 감독의 믿음속에 출전시간을 늘려가던 김병석은 골까지 성공시켰다. 그의 목표는 대전의 잔류다. 힘들때 자신을 끌어준 팀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시즌이 끝나면 못다한 결혼식도 계획하고 있다. "힘들게 한국 무대로 돌아온만큼 열심히 해서 자리잡아야죠." '풍운아' 김병석의 축구인생 4막은 이제 시작이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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