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터처블!' 그에게서 에이스의 향기가 묻어난다.
26일 두산과 한화의 경기가 열린 잠실구장. 경기를 앞두고 한화 박찬호가 두산 선수단을 찾았다. 박찬호가 1루 덕아웃 뒤쪽 복도로 들어서자 훈련을 끝내고 경기를 준비하고 있던 두산 선수들이 깍듯하게 인사를 건넸다. 이날 두산 선발 노경은 역시 박찬호와 마주치자 고개를 숙이고 예를 갖췄다. 박찬호는 노경은을 보자마자 "오, 에이스"라며 대견하다는 듯 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박찬호는 올해 한화에 입단하기 이전부터 두산 선수들과는 각별한 친분을 유지해 왔다. 특히 두산의 일본 전지훈련에 참가해 선수들과 함께 시즌을 준비하면서 깊은 인연을 맺었다. 노경은도 전지훈련서 박찬호로부터 정신적, 기술적 조언을 들었다. 박찬호는 올해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는 후배 노경은을 보자 대견한 마음에 '에이스'라 칭해준 것이다.
박찬호 뿐만이 아니다. 요즘 노경은은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칭찬 세례 속에 시즌을 마무리하고 있다. 걸려오는 전화도 많아졌고,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도 부쩍 늘었다. 이에 대해 노경은은 "지난번(9월6일 한화전) 완봉승을 하고 난 후부터 알아보는 사람도 많아지고, 바빠진 것 같다. 그때 완봉승한 것이 올해 가장 큰 수확이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20일만에 다시 만난 한화. 노경은의 '언터처블' 투구는 그대로였다. 9이닝 동안 단 3개의 안타만을 내주고 무실점으로 막는 완봉쇼를 펼치며 시즌 11승째를 올렸다. 니퍼트와 팀내 다승 공동 1위가 됐다. 지난 6일 한화전부터 이날까지 4경기, 33이닝 연속 무실점 행진을 이어갔다. 36이닝 연속 무실점을 기록중인 KIA 서재응 못지 않은 놀라운 행보다. 올시즌 두 차례 완봉승을 올린 투수는 노경은과 KIA 윤석민 뿐이다.
송곳 제구력에 직구, 슬라이더, 커브, 포크볼 등 자신의 모든 구종을 자신있게 뿌려대며 한화 타자들을 압도했다. 1회 1사 2루서 최진행을 파울플라이로 처리한 것을 시작으로 7회 선두 박노민에게 좌전안타를 허용하기 전까지 14타자 연속 범타 처리를 할 때는 '신들린' 듯했다. 6회와 8회 두 차례의 1사 1루 상황에서는 빠른 직구를 승부구로 던져 모두 병살타를 유도하며 위기를 넘겼다. 과감한 승부와 공격적인 피칭이 주효했다. 삼진은 9개를 솎아냈다. 2003년 데뷔 이후 처음으로 정규시즌 규정이닝(133이닝)을 넘어섰고, 평균자책점은 2.76에서 2.58로 낮췄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두산은 포스트시즌 선발 순서를 놓고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생겼다. 후반기 들어 가장 성적이 좋은 노경은을 포스트시즌 첫 경기 선발로 내세울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노경은은 "(이)용찬 다음에 나가야지요. 1차전은 무조건 니퍼트가 나간다고 보면 되는 것이고요"라며 손사래를 쳤다.
이어 노경은은 완봉승 소감에 대해 "초반 포크볼 느낌이 별로여서 중간에 (양)의지와 상의해 직구 위주로 바꿨고, 후반 다시 직구 타이밍에 포크볼로 간 것이 주효했다"며 "홈에서는 내가 더 유리하다는 생각으로 편하게 던졌고, 야수들이 지쳐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템포를 빠르게 했다. 감독님과 정명원 코치님의 믿음에 부응하고 싶었다"며 기쁨을 나타냈다.
이날 잠실에는 1만2910명의 관중이 입장해 두산은 구단 역대 한시즌 최다 관중 신기록(125만7881명)을 작성했다. 새 에이스의 완봉쇼는 그래서 더욱 의미가 컸다.
잠실=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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