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철퇴축구'는 전북의 '닥치고 공격(닥공)'과 함께 K-리그 '명품' 브랜드다. 올시즌 '명품 철퇴'로 거듭났다. 강력한 원동력 중 한 가지는 든든한 수문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김·영·광(29)이다.
소속팀에선 언제나 '넘버 원'이었다. 2002년 광양제철고를 졸업한 뒤 서서히 전남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발돋움했다. 일찌감치 A대표팀에도 발탁됐다. 2004년 첫 태극마크를 달았다. 최인영-김병지-이운재의 한국축구 골키퍼 계보를 이을 재목으로 인정받았다.
항상 환희의 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06년 시련이 닥쳤다. 고교시절부터 차세대 수문장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동갑내기 염동균에게 주전 자리를 내줘야 했다. 결단이 필요했다. 결국 김영광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2007년 울산행을 택했다. 당시 20억원(추정치)이라는 파격적인 이적료를 발생시키면서 울산에 둥지를 틀었다. 승승장구였다. 주전 자리는 그의 몫이었다.
벌써 프로 11년차가 됐다. 풍부한 경험은 김영광이 가진 최고의 무기다. 그러나 치열한 주전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이번 시즌 초반 백업 골키퍼 김승규에게 잠시 주전 자리를 내줬다. 김호곤 울산 감독은 높이가 높은 팀을 상대할 때는 김승규를 출전시키는 경우가 잦았다. 분업화로 포장될 수 있지만 높이에 대한 단점은 김영광에게 스트레스다. 그러나 김영광은 곧바로 '명품 철퇴'에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돼버렸다. 지난 7월 중순 김승규가 손가락 골절로 김영광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상황도 좋지 않았다. 경고를 2개나 받고 있는 상황이라 경고 관리가 필수적이었다. 강한 책임감이 끝까지 김영광을 버티게 만들었다. 3개여월 동안 K-리그 15경기를 소화하면서 단 한 개의 경고도 받지 않았다. 매 경기 선방쇼를 펼쳤다. 8일 제주전(0대0 무)도 '명불허전'이었다. 오랜 만에 주전멤버들이 풀가동된 제주의 막강 화력을 신들린 듯 막아냈다. 전반에만 세 차례, 후반에도 두 차례를 선방했다. 모두 골이라고 낙담하고 있는 사이 동물적인 감각으로 골문을 지켜냈다.
9월 초 FA컵 준결승전은 김영광이 마음을 다잡은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당시 김영광은 심판 판정에 항의하다 레드 카드를 받았다. 김 감독은 평정심을 잃은 김영광을 호되게 혼을 냈다. 스플릿 이후 김영광이 자제심을 잃지 않고 그라운드에서 맹활약할 수 있는 약이 됐다.
김영광은 '스피드광'이다. 자신이 소유한 차량은 국산차와 외제차, 두 대다. 고속 주행을 즐긴다. 골키퍼적인 본능이다. 워낙 빠른 공을 막다보니 왠만한 스피드에 무감각한 면이 없지 않다. 구단에서 가장 활발하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하는 선수이기도 하다. 지난 4일 사우디 원정에도 게임기를 들고가 축구 게임을 즐겼고, 아이패드로 자동차 게임을 즐긴다. 특히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한다. 울산 관계자들은 "'운동 홀릭'에 걸린 것 같다. 팀 훈련 외에도 3~4시간씩 개인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러나 대표팀만 가면 언제나 '2인자'였다. 이운재의 시대가 저물고 김영광이 두각을 나타내는가 했지만 이내 주전 골키퍼 장갑을 정성룡(수원)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조광래호에선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하는 굴욕을 맛봤다. 김영광도 사람인지라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번 이란 원정에도 발탁됐지만 또 다시 벤치만 지키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김영광은 김성수 울산 골키퍼 코치의 조언으로 버티고 또 버티고 있다. 김 코치는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프로다. 그것을 이겨내야 진정한 프로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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