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까지 통산 도루가 11개에 불과했던 넥센 히어로즈 홈런타자 박병호는 발이 느리다는 선입견을 깨고 올시즌 '20(홈런)-20(도루)'을 달성했다. 호쾌한 타격을 앞세워 전반기 홈런 1위를 질주했던 강정호도 박병호에 앞서 '20-20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시즌까지 6년 간 강정호가 기록한 도루는 12개였다. 박병호와 강정호가 도루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반드시 등장하는 게 염경엽 주루작전코치였다. 박병호는 지난달 스포츠조선과 인터뷰에서 "염경엽 코치 덕분에 체중이 97kg이나 나가는 나도 도루를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중심타자인 박병호와 강정호의 예처럼 젊은 팀 히어로즈는 뛰는 야구로 전력을 한단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지난해 99개의 도루로 8개 구단 꼴찌였는데, 올해는 179개로 1위에 올랐다. '느림보 히어로즈'를 '쌕쌕이 히어로즈'로 바꿔 놓은 게 10일 넥센 신임 사령탑에 선임된 염경엽 감독이다.
염 감독은 늘 조그만 노트를 휴대하고 다닌다. 각 구단 투수의 투구 버릇과 볼배합 특성이 깨알같이 적힌 기록장이다. 주자가 나가면 상대 투수 투구동작의 허점을 파악해 스타트 사인을 낸다. 또 변화구 타이밍을 알아내 도루 성공률을 높였다. 연구하고 공부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단면이다. 3루 주루코치 염경엽은 적시타가 터졌을 때 주자의 홈 대시를 결정하는 수준의 역할에 머무르지 않았다.
지난달 김시진 감독을 전격 경질한 넥센이 후임 사령탑에 염경엽 코치를 선임한 이유가 여기 있다.
히어로즈로선 아쉬움이 큰 2012 시즌이다. 전반기를 3위로 마감하며 2008년 구단 출범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을 꿈꿨는데, 후반기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부상자가 속출하고 주전급 선수들이 체력저하로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좀 더 전략적이고 꼼꼼한 선수관리가 이뤄졌다면 맥없이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
이라는 게 구단의 냉정한 평가였다.
히어로즈는 김시진 감독을 경질한 직후에 일찌감치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역동적인 젊은 지도자'를 후임 감독의 기준으로 제시했다. 아울러 공부하는 지도자, 연구하는 지도자에게 팀을 맡기겠다고 했다. 사고가 제한된 지도자가 아니라 히어로즈를 지금보다 더 활기가 넘치는 역동적인 팀으로 만들어줄 지도자를 뽑겠다고 공표한 것이다. 지도자의 화려한 경력과 지명도를 따지고, 모기업 고위층의 코드에 맞는 지도자를 찾아야하는 기업구단과는 차원이 다른 접근이다.
그동안 히어로즈는 내부인사와 프로팀 감독 경력이 있는 지도자는 물론, 아마팀 감독, 외국인 지도자까지 총망라해 검토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지도자들의 경우 구단 최고위층이 직접 면담에 나서 구단이 제시한 기준에 부합하는 지를 면밀히 체크했다. 히어로즈가 그룹총수가 올라온 후보 명단을 보고 재가를 하는 기업팀이 아니라 야구전문기업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염 감독의 또다른 장점은 폭넓은 경험이다. 2000년 현대 유니콘스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한 염 감독은 현대 운영팀 과장과 수비코치, LG 운영팀장과 수비코치를 거쳐 지난해 11월 주루작전코치로 넥센 유니폼을 입었다. 코치뿐만 아니라 스카우트로 활동했고, 운영팀장까지 경험해 구단 시스템을 잘 알고 있다. 야구전문기업인 히어로즈에 적합한 경력이라고 볼 수 있다.
내년 시즌 포스트시즌 진출을 노리고 있는 히어로즈가 염경엽 체제에서 어떤 성과를 낼 지 지켜보자.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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