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글서글한 얼굴 어디에 그런 광기 어린 눈빛이 숨어 있었던 걸까. MBC 사극 '무신'에서 고려 무신정권기의 폭군 최항을 연기한 백도빈에게 시청자들은 '패악질 카리스마'라는 수식어를 붙여줬지만, 실제의 그는 강직한 경찰이나 훈훈한 교회오빠가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인상이다. 백도빈 본인도 "평소 이미지와 작품에서의 캐릭터가 많이 다른 편이라 사람들에게 의외라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고 했다.
지난 해 11월 첫 촬영을 시작해 3번의 계절을 지나 선선한 가을 바람과 함께 '무신'을 마쳤다. 망나니에서 폭군으로 거듭난 최항(백도빈)과 무신정권의 실세 김준(김주혁)의 숨막히는 대결은 '무신'의 후반부를 흥미롭게 장식했다. 조선 광해군과 연산군만 떠올렸던 '폭군 캐릭터'에 최항을 새롭게 추가시킨 백도빈의 살벌한 연기에 대한 칭찬도 자주 들렸다. "최항은 권력자 아버지의 눈밖에 나서 좌천됐다가 10여년 후 칼을 갈면서 돌아온 인물이에요. 그 휴지기의 인격 변화를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관심을 가져주실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기존의 폭군 캐릭터는 드라마에서 많이 다뤄졌지만 최항은 낯선 인물이라 시청자들이 신선하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을 하면서 저도 배운 것이 많아요. 제 연기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무신'이 방송되는 동안, 그가 양녕군 역할로 출연한 영화 '나는 왕이로소이다'도 개봉했다. 사극 장르와 유난히 호흡이 좋은 편인데, 실제로 사극을 좋아하기도 하고 대학에서 부전공으로 택했을 만큼 역사에 관심이 많다.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고증하는 작업과 한 시대의 삶을 경험하고 재조명한다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고 했다.
사극과의 인연은 이뿐만이 아니다. MBC '선덕여왕'에 출연할 때 첫째 아들 준우를 얻었고 '무신' 방영 중에 둘째 딸 서우가 태어났다. "세번째 사극에선 셋째가 태어나려나 보다"며 껄껄 웃는 모습에서 자상한 아빠의 모습이 엿보인다. "아내(정시아)에겐 많이 미안해요. 배우로서 뭔가를 해보려고 할 때마다 제가 걸림돌이 됐어요. 아이가 생겨서…. (웃음) 이제 바통 터치를 해서 제가 육아를 맡고 아내가 일할 수 있도록 도와야죠."
백도빈과 정시아 부부는 백윤식과 함께 산다. 백도빈의 표현을 빌리자면 "얹혀 살고" 있다. "저희 집안에선 아버지가 제일 잘나가시죠. (웃음) 자식이기 이전에 같은 일을 하는 후배로서 귀감이 됩니다. 부럽기도 하고요. 그 연세까지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 저도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아버지는 넘어야 할 산이면서 따라가야 할 길이기도 하죠."
백도빈은 백윤식의 아들이란 타이틀이 버겁지 않다고 했다. 정시아의 남편으로 알려진 서운함도 없다. "배우로서 숙제가 되는 부분도 있지만 그런 수식어가 따라오는 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고 말했다. 같은 직업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가족을 극복의 대상으로 바라볼 거라 생각한 선입견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백도빈은 편안하고 여유로웠다.
아버지의 연기 생활을 보고 자랐지만, 애초에 연기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영화를 보는 건 좋아했지만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성격 탓이다. 그의 말마따나 "상상도 못했던 일"을 하게 된 건 알게 모르게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리라. 대물림된 재능은 '3세'인 아들 준우에게서도 엿보인다. "어느날 보니까 '무신'에서 제가 하는 연기를 따라하더라고요. '김준~'이라고 그럴싸하게 대사까지 하면서요. (웃음) 저도 지금과는 다를 때 어렸을 때는 테이블에 올라가서 조용필 노래도 부르곤 했다더라고요." 아들에게 연기를 시킬 생각은 없냐고 물으니 "무엇을 하든 건강하게만 자라길 바란다"며 웃었다.
데뷔 후 제대로 된 로맨스 연기를 못해봤는데, 이제 두 아이의 아빠다. 배우로서 못해본 연기에 대한 욕심을 물어니 이렇게 답한다. "그동안 강한 인물을 많이 표현했으니까, 소시민처럼 평범하고 정상적인 인물을 만나보고 싶네요. (웃음)"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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