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은 야구 경기 도중 의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의사소통 수단이다. 벤치의 작전 지시가 사인을 통해 전달되고 사인에 따라 공격과 수비 작전이 모두 달라진다.
투수가 공을 던지기 전 그라운드와 덕아웃 내의 선수들이 모두 한명을 바라본다. 벤치의 사인을 받아 그라운드에 전달하는 3루코치다.
머리, 어깨, 손등, 팔꿈치, 손등, 모자챙, 팔 쓸어내리기 등 주루 코치의 손이 닿는 곳마다 작전이 숨어있다. 코치가 만지는 동작 중 딱 하나만 사인이다. 그것을 팀 선수들이 모두 알아 채는 것은 키(Key)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키는 진짜 작전이 나오기 직전 하는 동작이다. 가령 코치가 머리-어깨-턱-모자-팔꿈치-어깨-손등-팔쓸어내리기 순으로 만졌을 때 사전에 약속된 키가 손등이라면 팔쓸어내리기가 진짜 사인이다. 팔쓸어내리기가 뜻하는 것이 번트라면 타자는 번트를 대고, 치고달리기라면 주자는 뛰고 타자는 스윙을 한다.
상대방도 뻔히 보고 있기 때문에 금세 알아채기도 한다. 패턴을 보고 알아내기도 하지만, 사인이 다 끝나기도 전에 타자가 고개를 끄덕이거나 하면 그전에 이미 키가 나왔다는 뜻이 된다. 히트앤드런 사인이 나왔을 때 타자가 치지 못하게 피치아웃을 하고 2루로 뛰는 주자를 아웃시키기는 장면을 가끔 볼 수 있는데 이땐 사인이 간파됐을 수도 있지만 상황에 따라 작전이 걸렸을 것이란 판단에 따라 수비팀이 그에 대비한 작전을 걸었다가 들어맞았을 경우다. 키가 탄로났다고 생각될 경우엔 경기 중에도 키를 바꾸기도 한다. 너무 자주 바꾸면 선수들이 헷갈려 사인 미스가 나올 수도 있다.
트레이드가 되면 양 팀은 공히 사인 체계를 확 갈아엎는다. 팀을 옮긴 선수들이 친정팀의 사인 체계를 말해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복잡하다보니 간간이 사인 미스가 나온다. 12일 4차전에서 롯데가 초중반 흐름에서 계속 눌려야 했던 결정적 계기는 박종윤의 사인미스였다. 0-2로 뒤진 4회말 무사 1,2루에서 박종윤은 번트모션을 계속 취했지만 대지 못했다. 볼카운트 2B1S에서 4구째 번트모션을 하던 박종윤은 이내 강공으로 돌변해 방망이를 돌렸다. 페이크번트앤 슬래시 작전이 걸린 것.
그러나 이 작전도 두가지가 있다. 슬래시와 함께 주자가 뛰는 슬래시앤드런이 있고, 타자가 스트라이크일 때만 치고 주자는 그 상황에 따라서 움직이는 작전이 있다. 박종윤은 두산 선발 김선우가 던진 몸쪽에 바짝 붙어 떨어지는 변화구 볼에 헛스윙을 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스윙하지 않는 크게 벗어난 볼이다. 이 순간 1루와 2루에 있던 주자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즉 조원우 3루 주루 코치가 낸 작전은 타자는 상황에 따라서 페이크 번트 앤드 슬래시를 하고 주자는 타자의 타격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박종윤은 마치 주자는 뛰고 자신은 무조건 쳐내야 하는 히트앤드런으로 착각을 했고, 어이없는 볼에 선택의 여지없이 스윙을 했다. 각 팀은 포스트시즌에서 다시 한번 사인 체계를 바꾸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박종윤의 사인 미스에 영향을 줬을 수 있다. 놔뒀다면 3B1S의 유리한 볼카운트로 볼넷을 얻어 무사 만루의 찬스를 이을 수도 있었지만 2B2S가 됐다. 롯데 덕아웃의 양승호 감독이 뭔가 아쉽다는 듯 불평을 하는 장면이 TV 화면에 나왔다. 박종윤은 이후 다가온 조 코치에게서 직접 작전 지시를 들었다.
다시 한번 번트 자세를 취한 박종윤은 이번에도 강공으로 전환해 방망이를 돌렸고, 떨어지는 공을 치지 못해 삼진 아웃됐다. 롯데로선 초반 승부에서 가장 아쉬운 장면이었다.
부산=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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