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그룹 B(9~16위)를 '그들만의 리그'라고 한다. 강등권 탈출 이외에는 뚜렷한 목표의식이 없다. 특히 더 이상 올라갈 순위가 없는데다, 강등 걱정까지 할 필요 없는 그룹 B의 선두 9위 팀에게 더욱 동기 부여가 적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인천을 움직이는 힘은 따로 있었다. '갈 때까지 가보자'는 목표 의식 하나로 매 경기를 결승처럼 치르고 있다. 그래서 21일 세운 12경기 연속 무패 행진은 선수단과 구단 관계자들에게 잊지 못할 뜻깊은 기록이자 환희였다.
김봉길 감독이 이끄는 인천이 21일 K-리그 36라운드 전남전에서 0대0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12경기 연속 무패행진(8승4무)로 팀 최다연속 무패 기록을 경신했다. 2007년 세웠던 11경기 무패행진을 넘어선 구단의 새 역사다. 김 감독은 경기 전부터 기록을 의식한 듯 바짝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기록은 세우면 좋은거지만 선수들에게 이와 관련해 얘기하지 않았다." 무념론이었다. 기록 앞에서 부담감에 발목을 잡힐까 걱정했다. 김 감독의 우려대로 선수단의 몸이 예전처럼 가볍지 않았다. 기록을 의식한 듯 몸이 경직됐고 슈팅은 단 6개에 불과했다. 올시즌 인천을 9위까지 이끈 탄탄한 수비력으로 전남과 0대0 무승부를 기록한 것에 만족해야만 했다.
경기 뒤 만난 김 감독은 얼굴은 경기전과 동색이었다. 구단의 새 역사 창조의 순간, 기쁨을 누릴 만 했지만 여전히 차분했다. 김 감독은 "12경기 동안 지지 않은 것에 대해 선수단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로 기쁨을 에둘러 표현했다. 김 감독이 밝게 웃지 않은 이유는 새로운 동기 부여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 자칫 기록을 달성한 뒤 겪을 후유증을 최소화 해야 한다. 김 감독은 "매번 새로운 목표를 세워야 하는게 선수들 입장에서는 힘들 수 있지만, 인천은 또 다른 목표를 위해 뛰어야 한다"고 밝혔다. 새 목표는 B그룹 선두 수성. 여기에 한 가지 덧붙였다. "최근 2경기에서 득점이 없었다. 남은 7경기에서 최선을 다해 매 경기 득점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겠다." 성공적인 2012시즌의 피날레를 위한 김 감독의 마지막 주문이었다.
공교롭게 새 기록의 시작과 완성의 순간 상대한 구단이 김 감독의 친정인 전남이었다. 인천은 지난 8월 4일 안방에서 전남에 1대0 승리를 거둔 이후 12경기 무패 행진 중이다. 친정팀을 상대로 기록을 세웠다는 사실에 김 감독은 홀가분하게 기쁨을 누릴 수 없었다. 김 감독은 "전남 팀은 창단시절부터 주장을 했었고 코치도 해서 친정같은 팀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전남전에서 기록을 시작해서 새 기록까지 작성하게 됐다. 오늘을 계기로 전남도 잘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광양=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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