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동메달을 앞두고 열린 한일전, 공에 얼굴을 맞은 뒤 재빨리 정신을 차리기 위해 자신의 두 볼을 찰싹찰싹 때리던 모습이 생생하다. 와일드카드로 합류한 김창수가 부상으로 주춤하자, 그 바통을 이어받아 동메달까지의 남은 거리를 완주했던 그날, 홍명보호의 오른쪽 측면 수비로 흘렸던 수많은 땀방울이 드디어 값진 결실을 보았다.
하지만 소속팀 강원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풀리질 않았다. 한 번 빠진 연패의 늪에서 좀처럼 헤어나오질 못했고, 그 과정에서 두 감독이 떠나는 걸 지켜봐야만 했다. 아쉬움에 눈물을 보인 날도, 안타까움에 땅을 친 날도 많았다. 경기가 끝난 뒤 털썩 주저앉아 그라운드를 멍하니 바라보던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그래서 강원의 오재석에겐 36라운드 대구전 승리가 더욱 각별했다. 종료 직전 쐐기골까지 뽑아내며 서포터즈를 향해 큰절을 올리고 하트를 보냈던 그가 경기 후 인터뷰에서 남긴 멘트들을 옮겨본다.
"강원 오고 세 골 차로 이긴 건 처음이에요.
지난 시즌부터 강원 유니폼을 입은 오재석은 정규리그 기준 48경기에 나섰고, 그 중 9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 모든 승리에서 경기 막판까지 긴장을 늦출 수 있는 경기는 사실상 없었다. 1~2골 차 불안한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놓친 승리가 많았으니 다득점 승리에 언제나 목말랐던 강원이었다. 그런데 이번 대구전에서는 후반 48분 갑자기 상대 골문으로 돌진하더니 기어이 골키퍼까지 제치며 추가골을 뽑아냈다. '답답하면 직접 넣던가'를 몸소 보여준 뒤엔 서포터즈석을 향해 뭉클한 세레머니까지 전했는데, 그동안 어떻게 참았는지 모른다.
"매번 절박했는데,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어요. 감독님께서 계속 할 수 있다고 해주신 덕분이에요."
연패 속에서 신명 나게 뛰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동안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지 못했던 강원 역시 '패배 의식에 빠졌다', '절박함이 부족하다'는 평을 밥 먹듯 들어야 했다. 그런데 점점 짙게 드리운 '강등의 그림자'가 이런 팀을 변하게 한 걸까. 강원은 경기 초반부터 그룹 B 최상위권의 대구와는 다른 힘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강원 팬들의 만족도가 특히 높았던 것 또한 이런 맥락에서였다. 승리의 열망과 절박함이 그라운드에 고스란히 나타났고, 한 발자국씩 더 뛴 강원은 서포터즈의 외침대로 "대구 대파"에 성공했다.
"전력 분석하시면서 얘넨 수비가 약하니까 두 골 먹어도 세 골 넣을 수 있다고, 끝까지만 하라고 하셨어요. 상대 선수들과 직접 비교하면서 우리가 절대 떨어지는 레벨이 아니라고, 본 때 한 번 보여주자고,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면서요."
김학범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번 대구전을 앞두고 선수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까지 하면서 정신적인 부분을 자극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경기력이 나아지고 있느냐"는 질문엔 늘 "그것보다는 싸움닭 마인드가 부족하다. 그걸 바꾸는 게 급하다."며 답답해하던 김학범 감독이 이번만큼은 "선수들이 열심히 뛴 대가를 찾은 경기였다"며 흡족해했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할 순 없다. 창단 시즌 15,000명을 족히 넘기던 홈 관중을 다시 한 번 불러모아야 할 과제가 강원 앞에 남아있다. 잃어버린 만여 명의 팬들을 되찾기 위해선 더 많은 승리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강등권에서 살아남아야죠. 감독님께서 우리의 슬로건은 막판 뒤집기라고 하시더라고요."
이번 승리에 도취해있을 수만은 없는 이유가 또 있다. 상주를 제외하면 아직도 최하위, 15위에서 한 단계 더 올라가야 지긋지긋한 강등권에서 벗어날 수 있다. 15위 강원의 승점은 32점, 14위 광주 33점, 13위 전남 36점, 이번 주말 상주전에서 승점 3점을 얻는다는 가정 하에 최하위권 탈출 가능성도 있지만, 광주-전남을 다시 만나야 하는 남은 일정에 아직은 안심하기 힘들다. '매 경기를 결승전처럼'이라는 각오가 더 이상 식상하게 들리지 않는 시점에 다다른 셈, 8월 중순 이후 두 달 동안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했던 강원은 남은 6경기에서 '막판 뒤집기'로 1부리그 잔류에 성공할 수 있을까.
"골은 생각도 못 했죠. 개인적인 목표가 공격 포인트 4개였는데 다 채웠어요."
올해 3월 대구전에서 홈 경기 첫 승리를 거둔 날, 김은중의 골을 도운 오재석은 올 시즌 목표를 '공격 포인트 4개'로 잡았다. 그리고 오늘 대구를 맞아 1골을 추가하며 1골 3도움으로 목표를 달성했다. 직접 득점을 올린 건 지난해 10월 1일, 춘천에서 열린 전남전에서 후반 47분 헤딩으로 골을 뽑아낸 뒤 1년 만의 일. 측면 수비가, 그것도 좀처럼 슈팅을 날리지 않던 오재석이 공격 본능으로 중무장한 움직임으로 일대일 찬스를 잡아 골까지 뽑아낸 장면은 '인생 골'이라 불러도 지나침이 없어 보였다.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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