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에 큰 투수가 한 명 탄생했다."
지난 2007년 한국시리즈 4차전이 끝난 뒤 김성근 전 SK 감독이 내뱉은 한 마디다. 1승2패로 불리한 상황에서 낸 신인 김광현 선발 카드. 모두가 두산의 우세를 점쳤다. 상대가 리오스였기에 '버리는 카드'라고까지 얘기했다. 하지만 7⅓이닝 무실점, 김 감독의 깜짝 카드는 대성공했다. SK의 한국시리즈 첫 우승은 김광현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큰 경기에서 신인들을 기용하는 건 도박과도 같다. 경험 없는 어린 선수들에게 심리적 부담감은 거대한 장벽이다. 감독들도 신인급 선수들을 기용할 땐 엄청난 부담이 따른다. 성공했을 땐 '신의 한 수'라고 칭찬받겠지만, 실패했을 땐 모든 비난을 한 몸에 받는다.
삼성 류중일 감독은 이번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도박을 감행했다. 주전마스크를 진갑용이 아닌 이지영에게 씌웠다. 신고선수 출신 이지영은 올해가 풀타임 첫 시즌. 54경기에 나서긴 했지만, 주전포수 진갑용의 백업 역할이었다. 선발투수 5명 중 윤성환, 배영수의 전담포수로 나섰다. 진갑용의 노쇠화에 따른 포스트 진갑용 발굴 작업이었다.
경기 전 류 감독은 이지영의 선발출전에 대해 "거의 도박인 셈"이라며 웃었다. 하지만 이내 "주저하지 않았다. 이런 큰 경기를 통해 좋은 선수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기 위해선 한국시리즈 무대 같은 경험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지영은 류 감독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 보였다. 선발 윤성환을 잘 리드하며 5⅓이닝 1실점(비자책), 승리의 발판을 놓았다. 2-1로 아슬아슬하게 앞선 7회말에는 선두타자로 나서 좌전안타로 출루했다. 이지영과 교체된 대주자 강명구가 재치 있게 추가점을 뽑아낸 덕에 이지영이 더욱 빛났다.
이지영 뿐만이 아니었다. 류 감독은 윤성환이 6회 1사 2루 위기를 맞자 사이드암투수 심창민 카드를 꺼내들었다. 지난해 1라운드 전체 4순위로 입단한 심창민은 수술과 재활로 사실상 올해가 첫 시즌인 신인. 최 정-이호준의 우타자를 상대하기 위함이었다고 해도 도박에 가까운 투수 기용이었다.
심창민은 최 정과 이호준을 각각 좌익수 플라이, 3루수 땅볼로 잡아냈다. 모두 초구였다. 최 정과 이호준이 성급하긴 했지만,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오는 매력적인 공의 볼끝은 확실하게 살아있었다. 신인 답지 않은 배짱투였다.
류 감독은 경기 후 "훈련 때부터 심창민의 공이 굉장히 좋았다. 안지만과 권 혁이 있지만, 심창민이 키플레이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많이 성숙했더라. 그런데 7회 올라와서 볼만 6개를 주는 걸 보고 역시 어린 선수구나, 긴장을 하는구나 싶어서 바꿨다"고 덧붙였다.
심창민의 투구에는 아직 백점 만점을 줄 수는 없다. 하지만 류 감독은 이지영에 이어 심창민까지 강하게 베팅했다.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류 감독의 '선수 만들기'는 어디까지 진행될까. 삼성의 미래를 만드는 작업, 우승 여부만큼 중요한 일이다.
대구=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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