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다 살아나 보세요."
한국시리즈 1차전의 숨은 히어로는 강명구였다. 대주자로 투입돼 3대1 승리를 확정짓는 쐐기득점을 올린 주인공. 물론 주루코치의 사인을 뒤늦게 본 강명구의 실수가 분명했지만, 결과론적으론 재치 있는 주루플레이가 됐다. 강명구의 발이 SK 야수진의 판단을 이긴 것이다.
2-1로 아슬아슬하게 앞선 7회말 선두타자 이지영이 안타로 출루하자 삼성 벤치는 강명구 카드를 꺼내들었다. 김상수의 희생번트로 2루까지 간 강명구는 배영섭의 중전안타성 타구 때 3루를 돌아 홈까지 내달렸다. 문제는 이 깊숙한 타구를 SK 2루수 정근우가 잡아낸 것.
포구 순간을 보지 못한 강명구는 3루를 지나쳐 홈으로 향했다. 하지만 3루를 돈 순간 김재걸 주루코치가 막아서는 걸 봤다. 주루코치와 부딪힐 뻔한 강명구는 3루로 귀루하지 않았다. 대신 지체 없이 홈으로 내달렸다.
강명구의 움직임을 보지 못한 3루수 최 정은 정근우의 송구를 받아 태그하려 했지만 강명구가 없었다. 홈으로 송구했지만, 강명구의 빠른 발을 이길 수 없었다. 삼성으로선 승리를 위한 소중한 1점, SK로서는 뼈아픈 1점이었다.
2차전이 열린 25일 대구구장에서 만난 강명구는 당시 상황에 대해 "솔직히 '큰일났다' 싶었다. 베이스를 돌았는데 (김재걸 코치가)세우더라"며 "진만이형에게 가는 타구로 봤는데 진만이형이 가만히 있더라. 당연히 빠지는 줄 알았다"고 설명했다.
강명구는 세이프 판정을 받는 순간 펄쩍 뛰며 포효했다. '너무 좋아하더라'는 취재진의 말에 강명구는 "한 번 죽다 살아나 봐라. 우리팀 불펜이 좋으니까 1점만 더 나면 이길 것 같다고 생각했다"며 웃었다.
이렇게 남들보다 두 배, 세 배로 기뻐한 이유는 또 있었다. 8년 전 한국시리즈에서 범한 실수를 만회했다는 생각 때문이다.
강명구는 지난 2004년 현대와의 한국시리즈 9차전에서 7-8로 뒤진 8회 뼈아픈 오버런으로 2루와 3루 사이에서 아웃된 적이 있다. 당시 3루 주루코치였던 류중일 감독이 무사 1,2루서 나온 조동찬의 우전안타 때 2루주자 신동주를 3루에서 세웠다. 그런데 류 감독의 사인을 보지 못한 강명구가 2루를 지나쳤다 아웃된 것이다. 우승을 내준, 그야말로 결정적인 실수였다.
강명구는 "그때 9차전에서 '쇼'를 했을 때보다 어제 오늘 나간 기사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래도 강명구 하면 어제보다 2004년의 모습이 먼저 떠오를 것 같다"며 자책했다. 하지만 이내 "우승하려면 4승하면 되니, 최소 4득점하면 되겠다"며 활짝 웃었다. 대주자로서 '미친 존재감'을 보이는 강명구가 또다시 히어로가 될 수 있을까.
대구=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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