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믿지?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고 살게 해줄게."
거짓말인지 빤히 알면서도 여자들은 행복에 젖어 남자의 달콤한 말만 믿고 사랑을 허락한다. 여자들이 평생 후회하는 것 1위는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남자와 섣불리 결혼한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사랑할 땐 언제고 도대체 왜, 사랑이 평생 후회해야 할 대상이 되어버린 것일까. 대한민국에서의 결혼생활은 이율배반적이다. 사랑만으로 충분한 것이 결혼이며, 동시에 사랑만으로는 절대로 쉽지 않은 게 결혼이다. 부모님 말씀을 잘 따르면 탈이 없는 것이 결혼이지만, 부모님 말씀대로 했다가는 큰일이 나는 것이 결혼일 수도 있다.
사랑과 결혼의 이런 함수 때문인지 강남의 싱글 남녀 사이에는 '3.5대 6.5의 법칙'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상대방을 3의 비중으로, 상대의 부모를 6의 비중으로 놓고 본다는 것이다. 상대의 부모가 결혼 후 행복을 결정하는 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3.5대 6.5의 법칙'이라고 했으니 나머지 0.5 두 개는 무엇일까.
2006년 출간되어 140만부 이상 읽히며 우리 사회에 '배려' 열풍을 일으킨 책 '배려'의 작가 한상복은 그 0.5란 바로 자신의 몫이라 말한다. 당신이 여자라면, 남자의 0.5 그리고 그 부모의 0.5가 당신이 하기에 달렸다는 설명이다. 0.5와 0.5를 더해봤자 겨우 1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한상복은 이것만으로도 인생이 확 달라진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아무도 그 1에 대하여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냥 해보면 다 안다고 등을 떠밀 뿐이다.
한상복은 신간 에세이 '여자에겐 일생에 한 번 냉정해야 할 순간이 온다'를 통해 현실로부터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두 사람의 관계가 '어른의 사랑'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생김새마냥 제각각 다르면서도 혈액형처럼 비슷한 우리 주변의 연애와 결혼. 그 뒷모습을 눈여겨본 결과, 사랑을 온전히 지켜내는 커플들은 '서로의 차이'가 충돌할 때마다 냉정하게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는 현실적인 균형감각을 지녔다고 한다.
결혼 이후의 사랑은 상대가 나와 다르다는 점을 끊임없이 확인하며 그것을 인정해야만 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그래서 현실로부터 사랑을 지켜내려면 때로는 정치적인 감각을 동원해야 할 수도 있고 타협과 거래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온다고 말한다. 책은 이처럼 결혼 이후의 사랑이 '이상'과 '현실'을 함께 품어내며 조화를 이뤘을 때 비로소 온전해짐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형 스토리텔링의 1인자답게 한상복은 36개의 서로 다른 갈등을 겪고 있는 다양한 커플들을 등장시킨다. 내 모습일 수도 있는 '세상 어디에나 있는 흔한 커플'들의 이야기는 평행봉 위를 아슬아슬 걸어가듯 사랑을 지켜내는 어려움을 보여준다. 사랑하는 여자를 악녀로 만들어버리는 나쁜 남자도 있고, 사랑을 무기로 휘두르는 여자도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이야기 형태로 전개되지만 최신 뇌 과학으로부터 문화인류학, 심리학, 철학, 전래동화 등을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있어, 읽다 보면 저절로 사랑과 결혼생활의 지혜를 듬뿍 얻게 된 느낌이 들 정도다.
사랑의 절정에서 냉정한 선택을 쉽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어렵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김세형 기자 fax123@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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