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의 대장정을 치르다 보면 어느 팀이나 위기가 있기 마련이다. 시즌 내내 중앙 수비수들이 줄부상으로 고전했던 전북은 지난 10월 초 또 다시 위기에 빠졌다.
10월 3일에 열린 K-리그 34라운드. 부산과의 경기에 앞서 우승 경쟁을 펼치고 있는 서울이 수원에 패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승점차를 좁힐 수 있는 기회였다. 마음이 급했다. 평소와 달리 공격이 번번이 차단됐고 부산에 선제골을 허용하며 끌려다녔다. 2대2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지만 이겨야 할 경기에서 무승부는 참혹했다. 충격파가 오래 갔다. 올시즌 두 골차 이상 패한 적이 없던 전북은 10월 7일 열린 K-리그 35라운드 포항전서 0대3으로 대패했다.
올시즌 K-리그는 플레이오프 없이 리그 순위만으로 우승팀이 정해진다. 승점 1로 우승이 가려질 수 있다. 스플릿시스템이 가동된 이후 매 경기가 결승이다. 이 가운데 포항에 대패를 했으니 후유증이 상당할 듯 했다.
경험이 많은 베테랑 이동국(33) 김상식(36)이 나섰다. 포항전 패배 이후 선수단을 불러 모았다. "포항전 같은 경기력이면 절대 우승할 수 없다. 이대로는 안된다"며 선수단에 위기의식을 불어 넣었다. 고참들의 질책에 분위기는 무거웠다. 그러나 일순간에 무거웠던 분위기를 잠재운 이가 있었다. 에닝요(31)였다. 감히 선배의 말을 끊었다. 무거운 분위기에서 선배가 진지한 얘기를 하는 가운데 에닝요가 던진 한 마디에 라커룸은 웃음바다가 됐다.
"다 필요없고, 우리 회식하면서 소주나 한잔 해. 그럼 돼." 평소 몸관리를 위해 술 한 모금도 마시지 않는 에닝요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통역을 통해 에닝요의 말을 전해들은 선수들은 참던 웃음을 결국 터뜨리고 말았다. 이동국 김상식 마저도 더 이상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회식은 없었다. 라커룸에서 크게 한 바탕 웃은 것만으로도 선수단 분위기는 바뀌었다. 경기력도 몰라보게 좋아졌다. 울산과의 K-리그 36라운드에서 이동국은 선제골을, 에닝요는 결승골을 도우며 3대1 승리를 이끌었다. 이후 이동국은 4일 부산전(3대0 승) 등 3경기 연속골(4골)을 넣으며 전북의 슬럼프 탈출을 이끈 일등공신이 됐다. 같은날 서울은 수원전에서 승점 1을 추가하는데 그쳐 서울과 전북의 승점차는 5점으로 좁혀졌다. 선두 추격이 사정권 안으로 들어왔다.
이동국 김상식이 깨운 위기의식, 에닝요의 '소주 한잔'으로 전북이 다시 우승 경쟁에 불을 지폈다.
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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