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이 알 아흘리를 꺾고 아시아챔피언이 된 11일 밤.
박경훈 제주 감독은 낙엽이 떨어진 포항 시내를 걸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서 였다. 기쁨과 질투심이 공존했다. 조용히 한 시간 가량 걸었을까. 박 감독의 결론은 하나로 모아졌다. '내년에 기필코 아시아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다시 가져오리다.' 울산의 우승은 제주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K-리그 39라운드 경기를 위해 포항 원정을 온 박 감독은 코치진과 함께 아시아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관전했다. 울산은 완벽한 경기력을 보이며 3대0 완승을 거뒀다. K-리그의 위상을 높여준 울산을 향해 절로 박수가 나왔다. 울산의 우승원인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러다 이내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축제의 무대에 직접 서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었다. 박 감독이 포항 시내에 나선 것이 이것 때문이었다. 그는 "참 기분이 좋았다. K-리그의 우수성을 최고령 감독님께서 다시 한번 증명해준 것 아닌가. 근데 묘한 기분이 생기더라. '내가 저기 있었으면' 하는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서 포항 시내를 걸었다"고 고백했다.
박 감독은 울산의 우승을 보며 느낀 부분이 많았다고 했다. 더 높은 도약을 위한 철저한 분석이 따랐다. 그는 "결국 선수들의 힘이 가장 중요하다. 울산의 국내파는 대표급 선수들이 즐비했다. 백업도 탄탄하다. 에스티벤, 하피냐 등 외국인 선수들도 잘 영입했다. 우리팀 구성원들의 힘을 더 높일 필요가 있다. 좋은 외국인 선수영입을 위해 박차를 가할 것이다"고 했다.
박 감독에게 아시아챔피언스리그는 아픔이다. 그는 2010년 K-리그 준우승을 차지하며 2011년 호기롭게 아시아무대에 도전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감바 오사카, 톈진 테다에 밀려 E조 3위에 머물며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당시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 참가한 K-리그 팀 중 유일하게 16강 무대를 밟지 못했다. '에이스' 구자철이 독일로 떠나고, 기대를 모았던 새 외국인 선수들은 적응에 실패하는 등 전력 이탈이 있었다. 쓰디쓴 경험이었다. 박 감독 스스로 "리그와 아시아챔피언스리그를 병행할 경험이 부족했다"고 털어놨을 정도다.
2012년 목표도 당연히 아시아챔피언스리그 무대 복귀였다. 초반 분위기는 좋았다. '박경훈식 패싱축구'가 자리를 잡으며 한때 리그 선두까지 나섰다. 그러나 홍정호, 산토스 등 주축 선수들의 부상이 이어지며 순위가 추락했다. 기대를 모았던 FA컵도 4강에서 아쉽게 포항에 무너지며 탈락했다. 6위 제주(승점 55)는 최근들어 3경기 연속무패행진(2승1무)을 달리고 있지만 아시아챔피언스리그 티켓이 주어지는 3위(수원·승점 68)까지 승점차가 제법난다. 박 감독은 "아직까지 포기를 한 것은 아니다. 마지막까지 기적을 노려볼 것이다. 우리팀에 젊은 선수들이 많은만큼 올시즌 경험은 큰 자산이 될 것이다"고 했다. 울산이 준 우승의 환희는 박 감독에게 새로운 동기부여가 됐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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