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전 올림픽대표팀 감독(43)은 '명장'이 되기 위한 여러 요소를 갖추고 있다. 특히 인문, 철학적 소양에도 밝다. 이 장점이 사상 첫 올림픽 메달 획득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홍 감독이 26일 축구계 선후배 앞에 섰다. 그는 P급 및 A급 지도자 강습회에서 런던올림픽 성공을 주제로 특별 강연을 펼쳤다.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나 강연을 시작하자 목소리에 자신감이 넘쳤다. 이날 홍 감독은 올림픽 성공을 일군 이른바 4단계 'P' 전략(Planning, Prepare, Practice, Performance)을 공개했다. 다소 딱딱할 것 같던 강연은 올림픽 준비 과정과 본선 때 연출된 뒷이야기가 가미되면서 유연해졌다. 선수 선발 과정 중 발생했던 일화가 첫 번째 뒷이야기였다. 홍 감독은 "올림픽 준비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라고 회상했다. 당시 홍 감독은 A대표팀 차출 우선 원칙에 막혔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23세 이하 선수 의무 차출 권고가 있기 전까지 애를 먹었다. 본격적으로 본선을 앞두고 문제가 된 것은 김보경(카디프시티)이었다. 홍 감독은 3월부터 꾸준하게 일본을 방문해 J-리그 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유연한 J-리거들의 차출을 위해서였다. 한국 선수들을 보유한 모든 J-리그 팀들에게 승락을 받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본선 3주를 앞둔 7월 2일 대표팀 소집을 앞두고 비보가 날아들었다. 당시 김보경의 소속팀 세레소 오사카에서 선수를 보낼 수 없다고 전한 것이다. 홍 감독은 "J-리거 중 가장 중요한 선수가 김보경이었다. 세레소가 차출 반대 의사를 표하자 다른 J-리그 구단들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됐다"며 난감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홍 감독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강한 카리스마를 내뿜었다. 홍 감독은 "내가 세레소에 전화해 '김보경을 안뽑겠다'고 했다. 김보경에게도 직접 '올림픽을 생각하지 말고 세레소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메시지를 줬다"고 말했다. 세레소는 홍 감독의 의외의 반응에 적잖이 당황했다. 홍 감독은 "세레소는 내가 이렇게 나오리라 생각 못했을 것이다. 반대로 협박을 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자 세레소에서 다음날 '원래대로 보내주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일본 문화를 잘 아는 홍 감독의 '밀고 당기기' 기술이 없었다면, 김보경은 올림픽 무대도 밟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다.
두 번째 뒷이야기는 지동원(선덜랜드)의 영국전(8강) 선발 출전이었다. 당시 지동원은 조별예선 3경기에서 51분 밖에 소화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박주영(셀타비고)보다 경기력이 좋지 않아 후반 조커로 기용됐다. 그러나 영국전을 앞두고 홍 감독은 고민에 빠졌다. 주전 스트라이커들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지동원의 컨디션도 비슷했다. 그러나 지동원은 체력적인 면에서 앞서 있었다. 홍 감독은 용단을 내렸다. 영국전 최전방 공격수로 지동원을 낙점했다. 홍 감독은 "지동원의 선발은 전적으로 나의 감이었다. 당시 코치들이 나를 말렸다"고 했다. 홍 감독은 현역시절 경험을 잘 활용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홍 감독은 1997년 포항에서 일본 J-리그 벨마레 히라쓰카로 이적했다. 당시 6개월을 뛰면서 그라운드에서 '왕따'를 당했다. 동료들이 공을 주지 않았다.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후 홍 감독은 1998년 한-일전에 출전했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가장 강한 정신력으로 치른 경기였다. 일본에서 받았던 설움을 100% 쏟아부었다." 올림픽 당시 지동원은 홍 감독과 같은 상황이었다. '청운의 꿈'을 안고 밟은 잉글랜드 무대의 벽은 높았다. 좀처럼 출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팀 내에서도 영국 출신 선수들의 대화에는 잘 참여하지 못했다. 홍 감독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동원에게 '영국전에 네가 교체해달라고 하지 않을 때까지 교체하지 않겠다. 최선을 다하라'고 주문했다"고 털어놓았다.
파주=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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