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소년의 첫 번째 꿈이 이뤄졌다. '공부하는 운동 선수' 덕수고 우익수 이정호(19)는 서울대를 가고 싶다고 했다. 야구와 공부를 병행하면서 국내 최고 대학에 들어가는 건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닌데도 도전했다. 이정호 처럼 고교야구 선수이면서 동시에 정규 수업을 병행하는 선수는 극히 드물다. 학원 스포츠에도 몇 해 전부터 운동 선수도 이제 공부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아직도 학원 스포츠에서 가장 우선시 하는 게 팀 성적이다. 따라서 성적 내기도 힘든데 제대로 공부를 시킨다는 게 매우 어려운 일이다. 교장, 감독이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는게 맞다는 걸 알면서도 현실의 벽에 부딪혀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정호는 남들이 힘들다는 가시밭길을 뚫고 나왔다. 최근 발표된 서울대 체육교육과 수시전형에 최종 합격했다. 서울대는 체육특기생 전형이 없다. 일반 학생들과 동등하게 경쟁해서 합격했다.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문 사례다.
그는 보통의 고교야구 선수들과 다른 길을 걸었다. 대개 야구 선수들은 초등학교 3~4학년 때 지도자 또는 담임 교사의 권유로 운동에 입문한다. 이정호는 청량중 1학년때 리틀야구단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우연찮게 리틀야구단이 게임하는 걸 보고 흥미를 느껴 야구를 시작했다. 클럽 형식으로 공부를 하면서 시간이 날 때 운동하는 식이었다. 중학교 3학년때 덕수고 야구부장(김창배 교사)의 눈에 들어 지금까지 왔다.
이정호의 초등학교 성적은 매우 우수했다. 아들이 야구를 하겠다고 했을 때 간호 주무사인 어머니(정광순씨)는 반대했다. 아들이 운동 선수가 아닌 공부를 해서 좋은 대학에 가길 바랬다. 하지만 이정호는 야구하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어머니는 조건을 내걸었다. 야구와 공부를 제대로 병행하지 않을 경우 유니폼을 가위로 잘라버리겠다고 아들과 수차례 약속을 했다.
야구를 시작한 후 이정호의 성적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공부만 하는 친구들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래도 뚝심있게 버텼다. 특성화 계열인 덕수고에 진학했다. 덕수고 1학년 때 야구를 해서 서울대에 진학하겠다는 분명한 목표를 세웠다. 그 이후 인생 설계도 했다. 서울대 야구부에 입학, 신인드래프트에서 프로지명을 받은 후 한국야구를 이끄는 행정가로 성장하고 싶었다.
이정호는 평소에는 야구에 80%, 공부에 20% 시간을 할애했다. 반면 시험기간에는 반대로 시간 배분을 했다. 하루 시간표는 오후 5시까지 일반 학생 처럼 수업을 들었다. 그후 야구부에서 훈련을 하고 난 후 귀가해 자율학습으로 부족한 공부를 했다. 고교 3년 내내 수면 부족에 시달렸다. 정윤진 덕수고 야구부 감독에 따르면 이정호가 훈련하다 코피를 쏟은 게 한두번이 아니다. 생수 장사를 하는 아버지(이용재씨)는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해 아들에게 제대로 보약 한 번 먹이지 못한게 가슴 아팠다"면서 "집에서도 공부하다 코피를 흘렸지만 변변하게 먹이지 못했는데 아주 잘 성장해줘서 대견하다"고 말했다.
이정호는 전교 석차 9등(경영과 80명 중)까지 해봤다. 과목 중에는 수학을 가장 잘 했다. 3년 내내 공부를 하면서도 훈련 시간에 단 한 번도 지각을 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 성실했고, 항상 표정이 밝았다. 피곤해서 힘들었지만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2012년 청롱기 고교야구대회에선 12타수 6안타, 타율 5할을 기록, 덕수고가 우승하는데 일조했다.
정 감독은 좀 다른 길을 선택한 이정호를 많이 배려해주었다. 시험기간엔 공부할 수 있도록 훈련을 빼고 시간을 할애해 주었다. 야구부 동료들도 공부하는 이정호를 똑같은 선수로 받아주었다.
이정호는 공부하는 운동 선수의 성공 사례 중 하나로 평가할 수 있다. 학생, 감독, 학교가 같은 생각으로 나아간다면 불가능은 없다는 게 입증됐다. 제2의 이정호가 더 많이 나와야 한국 스포츠도 선진국 형태로 발전할 것이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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