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는 빛고을 광주월드컵경기장, 상대는 '무적함대' 스페인이었다.
2002년 6월 22일 120분간의 연장 혈투는 끝내 득점없이 막을 내렸다. 한-일월드컵 4강행의 마지막 관문이 남았다. 가혹한 신의 룰렛 게임인 승부차기였다. 전 세계가 숨을 죽였고, 한반도는 두 손을 모았다. 4-3. 마지막 키커는 주장 홍명보였다.
골망이 흔들리면 4강이었다. 아니면 역적이 될 수 있었다. 홍명보의 발을 떠나는 순간 신은 비로소 운명을 결정했다. 늘 미소가 인색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 순간은 달랐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환하게 번졌다. 두 팔을 벌려 환호했다. 4강 진출이었다.
'미완의 대기'인 그가 태극마크를 단 후 첫 국제대회가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3패)이었다. 대학 4학년 때였다. 1994년 미국(2무1패), 1998년 프랑스월드컵(1무2패)에 출전했지만 지구촌 잔치의 '들러리'에 불과했다. 월드컵은 항상 벽에 부딪히고 넘을 수 없는 큰 산으로 느꼈다. 그 아픔은 한-일월드컵을 통해 말끔하게 치유됐다.
2002년에 이어 또 '말의 해'다. 2014년 갑오년 새해다. 대망의 브라질월드컵 해가 밝았다.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홍명보는 올해 대한민국이 가장 주목하는 인물이다. 사령탑으로 첫 월드컵을 지휘한다.
홍명보 감독(45)은 곧 월드컵이다. 현역시절 한국이 치른 17경기에 연속 선발 출전한 대기록은 앞으로도 깨지기 힘든 역사다. 지도자로 첫 발을 뗀 후 코치로 처음으로 만난 무대가 2006년 독일월드컵이었다. 브라질월드컵, 한국 축구의 명운은 그의 어깨에 달렸다. 새해를 맞아 최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홍 감독을 만났다.
2012년 런던올림픽은 강렬했다. 올림픽 사상 첫 축구 동메달 신화를 연출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홍 감독이 빚은 작품이었다. 올림픽을 넘어 월드컵 해를 맞은 홍 감독의 감회는 더 특별했다. "아무래도 내 인생에서 월드컵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처음 국가대표가 된 후 6개월 후 월드컵에 출전했다. 현역 은퇴의 마지막 시점에도 월드컵에 나갔다. 코치가 되고 난 후에도 월드컵을 경험했다. 감독이 돼 월드컵에 나간다는 것은 선수시절 영광보다 더 큰 무거운 책임감으로 다가온다. 물론 부담 때문에 해야될 일을 못하면 안된다. 이젠 머리로 차갑게 월드컵을 준비해야 한다. 6개월 정도 남았는데 얼마만큼 잘 준비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이미 목표와 전략은 섰다. 한국은 브라질월드컵에서 러시아(6월 18일 오전 7시·이하 한국시각), 알제리(6월 23일 오전 4시), 벨기에(6월 27일 오전 5시)와 함께 H조 편성됐다. 첫 번째 과제는 역시 2010년 남아공대회에 이어 2회 연속 월드컵 원정 16강 진출을 이루는 것이다. 홍 감독은 "기본적으로 예선 통과가 가장 큰 목표다. 조별리그에서 살아남으면 그 이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 단추가 중요하다. 러시아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승부수를 던질 계획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첫 경기다. 러시아전이 남은 2경기를 가는 데 있어서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첫 경기부터 좋은 경기, 이기는 경기를 해야한다. 러시아전에 이어 알제리전도 잘 치르는 것이 가장 좋은 시나리오다. 일단 첫 경기에 초점을 맞춰 모든 것을 준비할 계획이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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