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렇게까지 안해도 될텐데. 열심이네."
프로야구 경기장의 덕아웃 한쪽에는 작은 모니터가 설치돼 있다. 어느 구장이든 마찬가지다. 경기 중에 중계화면을 보기 위한 용도? 아니다. 이 모니터는 외야쪽에 있는 불펜과 연결돼 있다. 그래서 감독이나 코치가 덕아웃에 앉아 불펜에서 투수들이 어떻게 훈련하고, 어떤 자세로 공을 던지고 있는 지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해주는 용도다. 경험많은 감독이나 코치들은 그 작은 모니터만 봐도 투수들의 상태를 금세 알아낼 수 있다.
12일 광주 기아 챔피언스필드의 3루쪽 KIA 덕아웃. 길게 뻗은 덕아웃의 왼쪽 편에 설치된 모니터 안에 한 투수의 역투가 담겨나왔다. 동시에 2명이 던질 수 있게 만들어진 불펜에서는 오른손 정통파 투수 한 명이 이리저리 구질을 바꿔가며 힘차게 공을 던지고 있었다. 곧 선발로라도 나가는 것일까? 보통 선발투수들은 등판 2일~3일쯤 전에 불펜투구를 한다. 각자 스타일에 따라 날짜 간격이나 투구수, 힘을 쏟는 정도는 달라진다.
어쨌든 이 모니터 안의 투수는 정말 열심히 불펜 피칭을 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경기를 앞두고 취재진과 대화를 하던 선 감독의 눈길을 사로잡았을 정도. 선 감독은 물끄러미 모니터를 보더니 말했다. "정말 열심히 던지는군. 사실 굳이 불펜 피칭을 할 필요는 없는데. 벌써부터 열심히 준비하는 건가."
불펜 피칭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게 무슨 뜻일까. 아니 그보다 앞서, 모니터에 나타난 그 투수는 누구였을까. 나중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KIA 우완 선발 김진우였다. 김진우가 불펜에서 열심히 공을 던지고 있던 것이다.
그렇다면 첫 번째 궁금증에 대한 답. 선 감독이 열심히 불펜 피칭을 하는 김진우를 보고 "저렇게까지 안해도 되는데…"라고 한 이유. 그건 바로 이미 시즌 잔여경기에 김진우를 투입할 계획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김진우에게도 통보가 간 상황이다.
12일 경기를 빼고, KIA는 3경기를 남겨둔 상황이다. 13일 광주 넥센 히어로즈전, 16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전, 그리고 마지막 17일 광주 한화 이글스전이다. 이 3경기의 선발 로테이션은 이미 코칭스태프 회의를 통해 확정이 됐다. 이 안에 김진우는 없다. 시즌 종료가 임박했고, 특별히 개인 타이틀 경쟁을 하는 것도 아니라 경기 출전보다는 컨디션 조절을 하라는 배려의 의미였다.
하지만 김진우는 이런 코칭스태프와의 결정과는 상관없이 불펜에서 굵은 땀방울을 쏟아냈다. 오죽하면 선 감독이 "저렇게 열심히 던지다니"라며 감탄할 정도다. 그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건 두 가지다. 우선 김진우가 엄청난 오기를 불태우고 있다는 것. 또 올해의 부진을 내년에는 씻겠다는 각오를 일찌감치 만들었다는 것이다.
올 시즌을 앞두고 김진우는 '선발 15승'을 목표로 내걸었다. 터무니없는 목표가 아니었다. 구위는 거의 예전 전성기때의 모습을 되찾았고,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훈련했기 때문이다. 선 감독 역시 김진우의 선전을 강하게 기대했다.
하지만 뜻밖의 사고가 김진우의 발목을 잡았다. 삼성과의 시범경기에 나왔다가 채태인이 친 타구에 다리를 맞은 것이다. 이것 때문에 김진우는 2개월을 쉬었고, 잘 만들어놨던 몸상태와 밸런스는 무너졌다. 결국 김진우는 올해 27경기에 나와 3승4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6.16에 그치고 말았다. 목표와는 아득히 멀어진 결과다. 자존심이 강한 김진우에게 이건 큰 오점이었다. 그래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불펜투구를 하는 것이다. 내년에 대한 준비. 김진우의 불펜 전력투구에 담긴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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