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동요하지 말고, 야구에만 집중하자."
광주 기아 챔피언스필드 야구장의 하늘에는 파란색 도화지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 10월 26일의 가을 하늘. 마침 따사로운 햇살까지 내리쬐었다. 늦가을답지 않은 쾌청하고 포근한 날씨. 한 마디로 '야구하기 딱 좋은' 그런 날이다. KIA 타이거즈 선수단의 마무리 훈련 첫 날은 그렇게 시작됐다.
하지만 그라운드에 모인 KIA 선수들의 표정에는 구름이 끼어있었다. 따스한 햇볕이 무색하게 위축된 몸짓과 굳은 표정. 이유가 있었다. 호기롭게 선수단의 마무리 훈련을 지휘해야 할 사령탑이 없었기 때문이다. 불과 일주일전 구단으로부터 2년간 재신임을 받아 2016년까지 팀을 이끌 예정이던 선동열 감독은 이날 챔피언스필드에 나오지 않았다.
재계약 발표 후 쏟아진 팬들의 비난이 가족의 휴대전화에까지 찍히고, 아내가 충격에 쓰러지는 일까지 벌어지자 결국 선 감독이 전날 자진 사퇴를 발표한 탓이다. 선 감독은 전날 직접 차를 몰고 고향 광주로 내려와 허영택 단장과 오랜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선 감독은 "제가 물러나야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간곡히 만류하던 허 단장도 울먹이는 선 감독을 끝내 잡지 못했다. 선 감독은 그렇게 마음에 상처를 입은 채 고향을 떠났다.
그러나 훈련은 계속되어야 한다. 선 감독의 빈자리는 임시로 한대화 수석코치가 맡았다. 한 수석은 마무리 훈련 첫 날 선수들을 그라운드에 불러모은 뒤 이렇게 말했다. "감독님이 이렇게 떠나게 되셔서 각자 마음이 무겁겠지만, 일단은 동요하지 말고 야구에만 집중해라. 지금은 그게 너희들 할 일이다."
이날 그라운드에 모인 선수들은 29일 일본 휴가시로 마무리 캠프를 떠나는 1.5군 멤버들이었다. 선수들은 한 수석의 말이 끝난 뒤 힘차게 파이팅을 외치고 2014년 첫 마무리 훈련을 시작했다.
한 수석은 "앞으로 어떤 분이 감독으로 오실 지 모르겠지만, 그 전까지는 내게 선수들을 이끌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예정된 대로 훈련 스케줄을 정상적으로 치를 수 있도록 선수들을 다독이겠다"면서도 "그래도 감독의 공석으로 어려운 점이 꽤 많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습이 보인다"고 말했다. KIA 선수들은 대부분 "어쩌다 이런 일이 생겼는 지 모르겠다. 우리 선수단이 힘이 없어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아 안타깝다"는 심경을 밝혔다.
KIA는 29일 일본 휴가시로 1.5군 위주의 총 39명 선수단이 마무리 훈련을 위해 떠날 예정이다. 원래 40명이었으나 선 감독이 제외돼 39명이 됐다. 내부적으로는 마무리 훈련 출발일 이전까지 새 감독 선임을 완료해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대세를 이룬다. 그래야 새 감독이 마무리 훈련부터 선수단을 이끌어 원활하게 2015시즌을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계획이 현실화될 지는 미지수다. 불과 사흘 밖에 시간이 남지 않은데다가 감독 인선 작업을 처음부터 전면적으로 새롭게 시작해야 하기 때문. KIA 허영택 단장은 이날 서울로 향했다. 구단 고위층에 팀의 현 상황과 감독 후보군에 대한 보고를 하기 위한 행보로 볼 수 있다. 과연 KIA가 마무리 캠프 출발 전까지 새 사령탑을 선임할 수 있을 지. 그리고 어떤 인물을 데려올 지 관심이 집중된다.
광주=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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