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찬바람이 어깨를 스치는 초겨울 문턱에 서면 한 해의 정리를 하게 된다. 올해 어떻게 살았는지 생각하다 보면 반성할 일들도 하나 둘씩 떠오른다. 웬만큼 잘못한 일이 아니고서야 한 해의 반성으로 끝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채 보낸 낙태의 기억이 있는 경우다.
우리나라가 OECD 내 자살율 1위라는 것은 이제 누구나 안다. 하지만 그와 함께 낙태율1위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마다 이유는 있겠지만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지 못하는 나라라는 오명이 반갑지는 않다.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아이들의 혼을 달래기 위해 '낙태 유산 영가 위령재'를 여는 스님이 있다. '절에서' '스님이' 여는 행사지만 여느 곳과는 다르다.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한 벽운사의 지산스님은 16년째 낙태유산아 위령재를 열고 있다.
벽운사에서 열리지만 종교와 상관없이 낙태아를 좋은 세상으로 보내고자 하는 마음으로 타종교인도 함께 참여할 수 있다. 실제로 불교식 '천도재'라는 명칭을 쓰지 않고 '위령재'라고 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실제로 타종교인이 참석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위령재는 무료로 진행된다. 초반에는 10만원 내외의 위령재비를 받았으나 참석자 연령대가 10대나 노령층도 있다보니 경제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어 무료로 진행하게 됐다. 대신 참여자들은 기저귀나 배냇저고리, 분유나 과자 등의 아기용품이나 미혼모 시설에서 필요한 생필품 등을 형편에 맞게 준비해야 한다.
준비된 아기용품과 생필품은 위령재가 끝난 후 전국 미혼모 시설에 전부 기부된다. 자선을 실천한다는 의미인데 참석자에 따라서는 2톤 트럭 5대 분까지 모이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10대 학생부터 80대 노인까지 전 세대가 함께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참회와 축복의 기도를 이어가고 있다. 사생활이 철저히 보장되기 때문에 참석자는 몇 백 명이 넘어갈 때도 있다.
연령층 뿐만 아니라 계층 또한 다양하다. 산부인과 의사라는 한 참석자는 "중절 시술을 할 때마다 늘 죄를 짓는 것 같았다"며 참회의 기도를 하기 위해 참석한다고 밝혔다.
낙태유산아 위령재는 오는 15일부터 벽운사에서 열린다. 벽운사는 서울 노원구 공릉동 7호선 공릉역 1번 출구 인근에 위치해 있다.
지산스님은 "누구나 마음의 짐이 있지만 낙태유산아에 대한 무거운 짐을 덜어버리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희생된 낙태아도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하기 위해 아가 이름도 지어 수계의식도 함께 진행한다"며 "위령재가 참회의 장으로서 가치있는 생명 존중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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