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일본 지바현의 소가스포츠파크.
2017년 동아시안컵의 시작을 알린 것은 소녀들이었다. 여자부 경기에 참가한 한-중-일, 그리고 북한까지 4팀이 이날 일본 지바현의 소가스포츠파크에서 대회 첫 경기에 나섰다. 북한과 중국이 첫판을 벌이고, 한-일전이 펼쳐지는 일정이었다.
도쿄의 '교통지옥'을 뚫고 한 시간여를 달린 버스가 경기장 앞에 다다르자 '인(人)의 장막'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경기장 주변 안전요원들은 탑승자들의 국적, 신분, 숫자를 꼼꼼하게 따지며 일일이 무선 보고를 주고 받은 뒤에야 통과를 허락했다. 환전소에서 계산기를 4~5차례씩 두들기며 같은 숫자를 확인한 뒤에야 돈을 건넬 정도로 '확인'을 중시하는 국민성 때문 만은 아니었다. 미사일 도발에 독자제재로 응수하면서 이번 대호에 나선 북한 남녀 대표팀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목 중인 일본 정부의 '입김'도 무시할 수 없었다. 다시마 고조 일본축구협회장은 7일 도쿄에서 열린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창립 15주년 기념 리셉션에서 "북한 남녀 대표팀이 대회에 우승해도 우승 상금을 주지 못한다"고 못박았다. '정치, 스포츠의 분리'를 외치는 일본 축구계도 정부의 서슬퍼런 눈길을 외면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중국전에 나선 북한 여자 대표팀, 그들의 외로운 싸움을 지탱한 것은 100여명의 재일 조선인들이었다. 이날 경기장에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계열인 가나가와 조선학교 학생과 교직원들이 목청 높여 북한 여자 대표팀을 응원했다. 자신을 고교 2학년생이라고 밝힌 한 여학생은 "오늘 경기를 응원하기 위해 선생님, 선후배, 친구들과 버스를 타고 이곳에 왔다"고 밝혔다.
경기장 내에는 '필승 조선', '이겨라 조선' 같은 응원 뿐만 아니라 북한 정부에서 강조하는 '만리마', '속도', '공격전' 같은 문구들도 내걸렸다. 붉은 막대 풍선과 북을 두들기며 '필!승!조!선!' 구호와 응원가 격인 '가리라 백두산'을 목청껏 부르는가 하면, 북한 여자 대표팀 선수들이 좋은 장면을 만들어낼 때마다 함성을 내지르며 응원전을 펼쳤다.
그라운드 안과 밖에서 만난 북한 여자 대표팀과 조선학교, 비슷한 운명이다. 일본 정부가 대북 제재를 이유로 각 현의 조선학교 보조금 지급을 없애겠다는 방침을 세우면서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일본 내에서 '자이니치(在一)'이라는 단어로 차별을 받는 이들에게 자신들만의 축구로 동아시아 강국들과 맞서는 북한 선수단의 활약은 묵은 체증을 뚫어주기에 충분한 '승부 이상의 승부'일 수밖에 없었다.
북한 선수단은 응원에 '승리'로 보답했다. 전반 24분과 후반 33분 김윤미가 각각 득점을 올리면서 중국을 완파했다. 북한 응원단은 득점이 터질 때마다 환호했고, 구호와 응원가는 더욱 커졌다. 북한 선수단은 경기 후 응원단이 자리를 잡은 관중석 쪽으로 다가가 박수를 치며 응원에 감사를 표했다. 이날 만큼은 이들에겐 '최고의 날'이었다.
지바(일본)=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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