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들의 꿈을 지켜주세요. 덕수고 야구부를 살려주세요."
새벽부터 눈이 쏟아져 서울의 아침 출근길은 온통 아수라장이었다. 눈이 조금 녹는가 싶더니 이제는 강풍이 몰아쳐 스산한 겨울 풍경을 완성했다. 한낮이었지만, 체감온도는 영점 아래로 뚝 떨어져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손이 곱고 얼굴이 굳어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추위는 정적을 부른다.
그 겨울의 차가운 정적을 깨는 외침들이 있었다. 13일 오후 서울시 교육청 정문 앞. 대형 버스가 서더니 낯익은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넥센 히어로즈 장정석 감독과 LG 트윈스 김재걸 코치, NC 다이노스 한규식 코치를 필두로 이용규 최진행 최재훈(이상 한화 이글스), 임병욱 임지열(이상 넥센) 한승택 이인행(이상 KIA 타이거즈) 류제국(LG) 등이었다.
이들을 필두로 한 수 십명의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려 어깨띠를 걸고 피켓을 들었다. 그리고 교육청 앞에서 목소리를 냈다. 모두 덕수고 야구부 OB들이다. 전현직 프로 선수와 코치 등으로 구성된 이들이 모인 이유는 서울시 교육청의 덕수고 통폐합 이전 결정으로 인해 덕수고 야구부가 해체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였다. 이 자리에는 신경수 백구회 회장과 한국 야구 중계 캐스터의 전설로 불리는 유수호 전 KBS 아나운서 등 야구원로도 함께 했다.
이에 앞서 서울시 교육청은 지난달 1일부터 20일까지 '학령 인구 감소' 추세에 의해 지속적으로 신입생이 줄어들고 있는 덕수고를 현재 위치(성동구 행당동)에서 송파구 위례신도시로 분할·이전한다는 내용을 행정 예고한 바 있다.
문제는 서울시 교육청이 당초 덕수고 측에 얘기했던 바와는 달리 현재 행당동에 남겨두기로 한 특성화 계열을 다른 특성화 고교와 통폐합하기로 한 것이다. 가뜩이나 새로 이전하게 되는 위례신도시 학교 부지가 불과 3500평으로 현재 행당동 학교부지(1만2000평)에 비해 턱없이 작아 야구부 훈련시설을 만들 수 없는 상황이라 만약 특성화고 통폐합이 이뤄지면 '덕수 야구부'는 사라질 수도 있다.
결국 야구부 출신 선배들이 나섰다. 이동수(49) 덕수 야구부 동문회장은 "특성화고를 일방적으로 통폐합하겠다는 교육청의 방침은 애초 우리에게 했던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그렇게 되면 한국 고교야구를 대표하고 프로야구의 뿌리가 돼 온 덕수 야구는 더 이상 존재하기 어려워진다. 어린 야구 후배들의 진로가 위태로워지는 상황이다. 그래서 선배들이 이 추운 날 거리에 나왔다. 우리의 요구 사항은 교육청이 기존안을 유지해주는 것이다. 특성화고를 현재 행당동에 계속 유지해주기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KBO리그를 대표하는 외야수이자 교타자인 이용규는 "모교 야구부가 위기라는 말을 처음 듣고 너무나 화가 났다. 교육청의 방침은 결국 덕수 야구부 후배들에게 훈련시설도 없이 훈련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마치 교실을 주지 않고 학생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억지 논리를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이용규는 이어 "그런 결정들로 인해 야구 후배들의 꿈이 사라지는 게 안타깝다. 내가 지금까지 프로선수로서 활약할 수 있던 건 고교 시절에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 열심히 훈련한 덕분이다. 덕수고 야구부는 내 뿌리나 마찬가지다. 지금 야구를 하는 후배들도 저마다 프로의 꿈을 품고 있을 것이다. 그걸 없애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덕수고의 통폐합 이전에 반대한다"는 구호를 목청껏 외쳤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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