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최만식 기자] "속았지만 그래도 보람은 크네요."
국제전화로 들려오는 성한국 대한배드민턴협회 경기력향상위원(56)의 목소리는 웃어도 웃는 게 아닌 듯했다.
하지만 몸은 힘들어도 배드민턴 불모지에 씨앗을 뿌리는 보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라고 했다.
성 위원은 현재 아시아의 끄트머리 몰디브에 머물고 있다. 한국대표팀 감독을 지낸 그가 인구 45만명의 인도양 작은 섬나라까지 간 까닭은 배드민턴 변방국을 돕기 위해서다.
지난 19일부터 1개월 일정이다. 한국체대 선수 4명(남녀 각 2명)이 동행했다. 협회의 협조 요청을 받은 학교의 승인을 얻어 해외 봉사활동 겸 코치 역할을 하게 됐다.
몰디브는 국제 배드민턴 무대에서 최하위급 약소국이다. 웬만한 국제오픈대회에도 명함을 내밀 실력이 안된다.
하지만 이른바 그들만의 리그, '인도양 도서국체전(indian Island Ocean Games)'에서는 상위권에 속한다. 인도양 도서국체전은 몰디브를 비롯해 모리셔스, 마다가스카르, 스리랑카 등 인도양 주변국들이 모여 치르는 종합대회다. 4년 주기로 열리는 그들만의 올림픽으로 동아시안게임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이 대회에서 몰디브 배드민턴은 지난 2015년 남자단체 은메달, 여자단체 동메달, 남자단식 동메달을 따낸 강자에 속한다. 7월 말 모리셔스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몰디브는 여자단체 금메달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성 위원은 몰디브의 목표 달성을 돕기 위해 배드민턴 선진국 지도자 봉사활동에 나섰다. 40년간 선수-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세계 웬만한 나라는 가본 그에게 몰디브는 처음이다.
평생 생각지도 못한 나라까지 가게 된 데에는 다소 우스꽝스런 사연이 있다. 김중수 협회 부회장의 '꾐'에 빠져든 결과다. 김 부회장은 지난 5월 말 아시아배드민턴연맹 총회에서 부회장 연임에 성공했다. 배드민턴 강국이 즐비한 아시아에서 부회장직을 사수한 것은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경사였다.
후보 15명 중 7명을 뽑는 선거 과정에서 김 부회장이 내건 공약 중 하나가 '아시아 배드민턴의 상생 발전을 위해 변방국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공약은 아시아연맹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무사 나시드 몰디브배드민턴협회장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모양이다. 나시드 회장은 대한배드민턴협회에 몰디브대표팀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
협회도 변방국을 돕는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동안 한국이 변방국을 위해 용품 지원, 국내 초청을 한 적은 있어도 감독-코치를 파견하는 것은 첫 시도라 의미도 있었다. 한데 문제는 '과연 누가 거기까지 가서 1개월간 체류하겠느냐'는 것이었다. 배우 이병헌의 유명한 대사 '모히또 가서 몰디브나 한 잔 할라니까'를 통해 더 유명해졌고, 휴양 관광의 천국이라고는 하지만 기간이 너무 길다. 아무나 대충 보낼 일도 아니었다.
고민하던 김 부회장은 마음 약하기로 소문난 성 위원을 떠올렸다. "천혜의 휴양지에 가서 머리 좀 식히고 와라", "이런 프로젝트엔 성 위원만한 사람이 없다. 대자연을 벗삼아 힐링도 할 수 있고…" 등의 감언이설로 유혹했고, 성 위원은 '덥석' 물었다.
하지만 막상 와보니 이게 웬걸. 성 위원이 머물고 있는 몰디브 수도 말레는 사람만 바글거리는 마을도시였다. 도심 풍경이 인도와 비슷하단다. TV, 사진에서 봤던 천혜의 휴양지는 배를 타고 몇시간을 가야 한다. 몰디브 국가 통틀어 체육관이 달랑 1개 있다. 한국으로 치면 학생체전같은 대회를 하는 까닭에 이를 피해 틈틈이 훈련 스케줄을 짜야 한다. 대표팀 선수들은 일반 직장생활을 겸하고 있는 터라 대표팀 소집도 쉽지 않는 등 모든 게 열악한 상황이다.
더구나 '애주가'인 성 감독에게 큰 고충은 술을 구경할 수 없다는 것. 힘든 하루 일과를 마치고 맥주라도 한 캔 할 수 있으면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도 되겠지만 이슬람 국가 몰디브에서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처음에 말레에 도착했을 땐 몰랐는데 며칠 지내며 실상을 알게 되면서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껄껄 웃은 성 위원은 "실력은 낮지만 똘망똘망한 대표팀 선수들의 눈빛을 보면, 학생체전에서 뿜어나오는 국민적인 배드민턴 열기를 보면 그동안 지도자 생활에서 느끼지 못했던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비록 그림같은 휴양지에 가서 모히또 한 잔 못했지만 날로 달라지는 선수들 훈련자세를 보는 것도 힐링이 된다는 게 성 감독의 설명이다.
성 위원은 '보람의 힐링'만 얻은 게 아니었다. '몸짱'도 가능할 모양이다. "술과 함께 야식을 안먹으니 살이 쏙쏙 빠진다. 한국 돌아가면 배에 '왕(王)'자가 생길 것 같은데…."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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