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KBO 역사의 한 획을 그은 김태균이 은퇴한 날, 한화 이글스가 6년만의 최하위를 확정지었다. 한화의 지난 20년을 책임진 레전드의 퇴장과 더불어 한층 입맛이 씁쓸해지는 하루다.
22일은 '영원한 독수리' 김태균의 공식 은퇴 기자회견이 열린 날이었다. 김태균은 이날 현장을 찾아 후배들을 격려하는 한편, 은퇴 기자회견에서도 "팬들과 약속했던 우승을 이루지 못한게 평생의 한이다. 후배들이 이뤄달라"며 눈물을 쏟았다.
하지만 이날 한화는 KIA 타이거즈 전에 4대10으로 패했다. 최근 8경기에서 무승부 한차례를 제외하곤 7연패를 기록, 잔여 시즌 결과와 무관하게 리그 최하위가 확정됐다. 팀 창단 이래 첫 10위다. 잔여 5경기를 모두 승리해도 9위 SK를 따라잡을 수 없다.
2020년은 한화에겐 너무 잔인한 한 해였다. 개막 전부터 사실상 최하위 싸움을 할 전력으로 꼽혔고, 결과도 결국 그렇게 됐다. 재계약한 외국인 선수 3인방 워윅 서폴드, 채드벨, 제라드 호잉이 2주간의 자가격리를 소화하며 코로나19 여파를 제대로 맞았다. 호잉은 부진을 거듭한 끝에 일찌감치 방출됐고, 채드벨은 거듭된 팔꿈치 통증으로 시즌내내 고전했다. 서폴드 역시 지난해 같은 위압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5월말부터 6월 중순까지 KBO 최다연패 타이기록인 18연패를 당했고, 이 과정에서 사령탑도 한용덕 전 감독에서 최원호 감독 대행으로 바뀌었다. 9월에는 2군에서 KBO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 2군 선수단이 통째로 꽁꽁 묶이는 불운에도 휘말렸다.
최 대행이 무너진 팀을 잘 수습하고, 젊은 선수들을 적극 기용하며 팀에 에너지를 불어넣은 결과 시즌 100패, 3할 미만 승률 위기에서는 탈출했다. 한때 9위 SK 와이번스에 승차없이 따라붙기도 했다. 하지만 김태균 정은원 김범수 장시환 등 주력 선수들이 부상으로 빠진 공백을 결국 채우지 못했다.
아쉬움 가득한 시즌이지만, 희망도 봤다. 일찌감치 가을야구와는 멀어졌지만, 유망주들이 충분한 기회를 얻었다. 지난해 1홈런에 그쳤던 노시환은 올시즌 12개를 쏘아올리며 '김태균 후계자'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유격수 박정현을 발굴했고, 임종찬 최인호 박상언 조한민 등 어린 야수들이 예년보다 많은 기회를 얻었다.
김민우와 베테랑 장시환은 규정이닝에 살짝 모자란 132⅔이닝을 소화하며 확실한 선발투수로 자리잡았다. 외국인 투수들의 부진에도 풀시즌을 책임지며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여기에 김범수까지 부상 전 보여준 가능성을 증명한다면, 벌써 내년 시즌 토종 3선발의 짜임새가 탄탄하다.
샛별 강재민과 윤대경으로 대표되는 '젊은 불펜'은 한화에겐 올해의 발견이라 부를만 하다. 마무리 정우람의 예년같지 않은 부진에도, 한화의 올시즌 불펜 평균자책점은 줄곧 리그 중상위권을 유지했다. 불펜 투수 개개인의 피로도도 높지 않다. 송윤준이 왼손 불펜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줬고, 돌아온 서균도 7경기 연속 무실점으로 호투중이다.
김태균과 작별한 한화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아직 구단 대표이사와 차기 시즌 사령탑을 확정짓지 못한 만큼, 아직 한화의 내년은 물음표다. 가을야구를 노크하기 위해서는 다가오는 겨울 스토브리그를 알차게 보낼 필요가 있다.
대전=김영록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