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최만식 기자] "미안한 아빠가 되고 싶지 않아요."
창원 LG는 올시즌 개막 초기부터 "농사 망치겠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재도-이관희-김준일의 토종 삼각편대를 구축하면서 2년 연속 최하위권 탈출을 기대했다.
한데 빅맨(2m2) 김준일이 개막전에서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면서 조성원 LG 감독의 구상이 망가졌다. 아니나 다를까. LG는 한동안 '승점 자판기'로 하위권을 전전했다.
그랬던 LG가 2라운드 후반부터 무섭게 치고 올라오더니 6강을 반게임 차로 위협하는 무서운 팀이 됐다. 이제는 "김준일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런 배경에 정희재(33·1m95)가 있다.
2012년 KCC에서 데뷔, 2019년 LG로 이적한 정희재는 프로 10년 만에 최고의 시즌을 맞고 있다. 베스트 멤버로 평균 8.9득점-3.4리바운드-1.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커리어하이' 시즌이다. 기록에서 나타나지 않는 그의 활약은 '알토란' 그 자체다. 상대 빅맨 수비, 스크린 등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잠깐 벤치에서 쉬다가 다시 나오면 내·외곽포로 '소방수' 역할도 톡톡히 한다.
김준일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어쩌다 출전기회가 많아져서 잘 나가는 게 아니다. 준비된 선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알고 보면 정희재는 고난 극복의 아이콘이다. 중학교 3학년, 늦게 농구선수를 시작했다. 늦게 시작한 만큼 남보다 몇 배 이상 공과 씨름을 해야 했다. 고려대에 진학해서는 부상으로 인해 1, 2학년을 통째로 쉬었다. 선수로서 성장기를 놓친 만큼 또 이를 악물었고, 프로 입성에 성공했다. 프로에서도 고난의 연속. 벤치를 지키는 시간이 더 많았고, 주무기로 여겼던 슈팅 감각마저 떨어졌다. 결국 2016년 상무 입대한 뒤 하루에 1000개 이상의 슈팅을 쏘았다.
KCC에서 필수전력에 들지 못해 LG로 FA 이적한 그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도 '베스트5'는 꿈도 꾸지 못하는 식스맨이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LG의 핵심 전력이다. 정희재는 그 비결에 대해 "감독님이 저를 믿어주신 게 가장 크다"고 말했다. 그 '믿음'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정희재는 비시즌 훈련기간 동안 슛폼 교정과 밸런스 집중 훈련은 물론, 포스트업을 추가 무기로 연마했단다. "감독님이 원하는 플레이를 하려면 슛만 쏘는 선수가 되면 안된다. 훈련한 것이 연습경기에서 통하다보니 자신감도 생겼다."
LG는 올시즌 플레이오프 진출을 바라보고 있다. 정희재는 KCC 시절 3차례 PO를 경험했지만 베스트로 뛴 적이 없다. "몇 년간 PO에 대한 간절함이 커졌다. 올해 PO에서 최선을 다하며 즐기고 싶다"는 목표도 생겼다.
목표를 꼭 달성하고 싶은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얼마 전 돌이 지난 첫딸 서안이와 아내에게 부끄럽지 않은 가장이 되고 싶어서다. 정희재는 "아기는 하루가 다르게 큰다고 하지 않나. 정말 예쁠 때 자주 못보는 게 처음엔 많이 힘들었다"면서도 "하지만 생각을 바꿨다. '이왕 떨어져 지내는 시간, 의미있게 보내자'고…. 더 열심히, 잘 해야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 덜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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