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10일(한국시각) 멕시코와의 친선경기에서 진가를 발휘한 오현규(24·헹크)는 홍명보호에 합류한 당시만 하더라도 안타까운 사연을 품은 '사연남'이었다. 벨기에 헹크에서 뛰는 오현규는 독일 분데스리가의 이적시장 마지막 날 2800만유로(약 450억원)의 거액 이적료로 분데스리가 명문 슈투트가르트 입단을 앞뒀다는 깜짝 보도로 축구팬을 놀라게 하더니, 이적시장 마감을 몇 시간 안 남겨두고 구단간 최종 합의가 불발돼 이적이 취소됐다는 소식으로 또 한 번 축구계를 들썩거리게 했다. 직접 슈투트가르트 클럽하우스로 날아가 메디컬테스트까지 진행했다. 수원 삼성 출신으로 2023년 셀틱에 입단한 오현규는 2년 만에 빅리그에 진출하는 '초고속 테크'를 타지 못했다는 아쉬운 마음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멘털이 무너졌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오현규는 의연했다.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승부욕과 강철 멘털로 유명했던 오현규는 "미국으로 넘어오면서 다 털고 회복했다. 분데스리가에서 스트라이커로 뛰는 행복한 일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지만, 이런 일로 좌절하고 슬픔에 빠지는 건 프로답지 않다. 항상 좋은 일만 있으면 인생이 재미없지 않나. 태극마크를 달고 이 자리에 온 것만으로 행복한 순간이기에 (A매치 경기를)잘 준비하겠다"라고 씩씩하게 말했다. 그저 말로만 '괜찮다'라고 한 게 아니었다. 7일 미국과의 첫 번째 경기에선 한국이 2-0으로 리드한 후반 18분 손흥민(LA FC)과 교체투입돼 실력을 뽐내기엔 시간이 부족했지만, 멕시코전에선 달랐다.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선발 출전한 오현규는 전반 초반부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의욕 넘치는 움직임으로 공격 진영을 활보했다. 15분 옌스 카스트로프(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의 헤딩 패스를 건네받아 첫 슈팅을 쏜 오현규는 5분 뒤엔 이강인(파리생제르맹)의 공간 패스를 받아 골키퍼와 일대일 찬스를 맞았다. 비록 오현규의 왼발 슛은 허무하게 골문 밖으로 벗어났지만, 오프사이드 트랩을 뚫는 움직임, 박스 안까지 단숨에 침투하는 스피드는 돋보였다.
홍 감독은 하프타임에 전반 부진했던 윙어 배준호(스토크시티)를 대신해 손흥민을 교체투입했다. 후반 20분, 우측에서 김문환(대전)이 올린 크로스가 문전에서 오현규와 헤딩 경합하는 멕시코 수비수 머리에 맞고 뒤로 흘렀고, 이를 손흥민이 발리슛으로 득점했다. 오현규는 23분, 골문 앞에서 이강인의 프리킥을 헤더로 돌렸지만, 골대를 살짝 벗어났다. 하지만 홍 감독은 3번의 기회를 날린 오현규를 교체하지 않고 경기장에 남겨뒀다. 벤치엔 오세훈(마치다)이 대기하고 있었다. 강한 신뢰가 밑바탕에 깔린 결정이었다. 후반 30분, 오현규는 네 번의 기회만에 멕시코의 골망을 흔들며 홍 감독의 믿음에 부응했다. 이강인의 침투패스를 받은 오현규는 페널티 박스 안 우측 대각선 지점에서 골문 좌측 하단을 가르는 오른발 슛으로 역전골을 뽑았다. 비록 팀이 후반 추가시간 4분 산티아고 히메네스(AC밀란)에게 동점골을 내줘 승리의 영웅으로 남진 못했지만, 월드컵 본선을 9개월 남겨두고 단순한 '후반 조커'를 넘어 '공격의 핵'이 될 가능성을 입증했다. 홍 감독은 "오현규는 이적이 무산된 실망감을 안고도 성숙하게 이겨낸 끝에 이날 득점했다. 선수 상태를 나타내는 좋은 골이었다"라고 엄지를 들었다.
오현규는 득점 후 자신의 무릎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독특한 세리머니를 펼쳤다. 슈투트가르트가 오현규의 9년 전 십자인대 부상 이력을 걸고넘어졌다는 걸 의식한 세리머니로 해석됐다. 오현규는 "그 팀을 저격한 건 아니다. 다만 내 무릎이 다른 선수 못지않게 건강한 상태란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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