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고요로 가야겠다' 펴내…천천히 음미하도록 지면 구성
국회의원 퇴임 후 첫 시집…"신경림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시 쓸 것"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바람이 멈추었다 / 고요로 가야겠다 / 고요는 내가 얼마나 외로운 영혼인지 알게 한다 / 고요는 침착한 두 눈으로 / 흘러가는 시간을 보게 하고 / 육신이야말로 얼마나 가엾은 것인지 알게 한다"(시 '고요'에서)
3선 국회의원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낸 도종환(70) 시인이 공직에서 물러난 후 첫 시집인 '고요로 가야겠다'(열림원)를 펴냈다.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에서 만난 시인은 복잡한 세상 속 고통받는 인간의 내면을 '고요'로 다스리는 길을 닦는 마음으로 이번 시집의 수록작을 써 내려갔다고 설명했다.
시인은 "우리는 소요(騷擾) 속에 산다"며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매일 새로운 일과 사건과 놀랄 만한 일들, 참을 수 없는 일들, 분노케 하는 일들이 기다린다. 고요한 시간에 지혜롭게 생각하고 아름답게 말하고 겸손하게 행동해야 하는데, 그러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소요의 시간을 고요의 시간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분노하거나 흥분한 상태에서는 경솔하게 판단할 수 있고 이성적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 더 차분해지고 침착해지는 시간을 갖고, 그 시간 속에서 지혜로워지고 슬기로워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작 시집은 범속한 세상 속에서 분노하고 슬퍼하는 인간의 내면을 조명하고, 그런 어지러운 마음을 추스르고 다잡는 과정을 담았다.
"아침에는 해 뜨는 쪽 향해 정좌하고 앉아 / 길게 숨을 들이마셨습니다 / 아침 햇살의 밝고 따스한 부분이 따라 들어와 / 고여 있는 슬픔의 기포를 툭툭 터뜨린 뒤 / 날숨에 얹어 천천히 데리고 나왔습니다"(시 '슬픔을 문지르다'에서)
시인은 "소요, 소음, 대립, 충돌, 분노, 미움, 혐오, 이런 것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일반적인 모습"이라며 "이번 시집에서 이야기하는 것들, '더 지혜로워야 한다', '생각이 깊어야 한다', '절제해야 한다', '겸손해야 한다'는 것은 더 잘 살기 위한 마음가짐이자 사람답게 살기 위한 태도이고, 그 길을 안내하는 것이 문학이고 시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고요로 가야겠다'는 85수의 시를 여덟 부분으로 나눠 실었다. 8부의 제목은 '이월', '고요', '달팽이', '슬픔을 문지르다', '사랑해요', '당신의 동쪽', '손', '끝'으로, 각 부 첫머리에 수록된 시의 제목과 같다.
시인은 이 같은 배치에 대해 "기존 시집의 틀을 깨고 싶었다"며 "천편일률적으로 4부로 나눠 각각 15∼20편씩 작품을 배치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의미의 덩어리로 여덟 부분으로 나눴다"고 했다.
각 부의 문을 여는 시 여덟 편은 1∼5행씩 나눠서 여러 쪽에 연이어 수록했다. 책은 이처럼 시를 조각내 보여준 뒤 마지막에 전체 시를 다시 한번 보여준다. 예를 들어 시 '이월'은 9쪽에 걸쳐 나눠서 한 번, 전체 시를 이어서 또 한 번 실었다.
이런 독특한 배치는 마치 전시실을 향하는 입구의 벽에 작품을 상상하게 하는 문구가 적혀 있는 것처럼 독자를 천천히 시의 세계로 안내한다.
시인은 "시를 너무 빨리 읽어치우기보다 천천히 읽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시는 본래 음미하면서, 생각하면서 천천히 읽어야 하는 것"이라며 "천천히 읽도록 한쪽에 조금씩 실어 편집했다"고 덧붙였다.
시인은 2012년부터 작년까지 세 차례 국회의원을 지냈고, 2017∼2019년 문체부 장관으로 일했다. 긴 시간 현실정치와 공직에 몸을 담았지만, 그가 시를 잊은 것은 아니었다. 의원 임기 말인 지난해 4월에는 등단 40년을 맞아 시집 '정오에서 가장 먼 시간'을 펴냈다.
시인은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의 생활에 대해 "작가로서 본래 해야 하는 일인 책 읽고 글 쓰는 일만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며 "내년 상반기에는 산문집을 내려고 1천매 이상 원고를 써 뒀고 막바지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읽고 쓰는 데만 온 정신을 쏟을 수 있는 시간이 찾아온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하는 생각"이라며 "문학을 만나면, 창작을 하면 회복이 된다. 열 편을 쓰면 열 번 회복한 셈"이라고 했다.
그는 "40년 글을 써도 시인은 현역"이라며 "내게 주어진 시간이 5년일지 10년일지 모르지만, 늘 현역으로 시를 써야 한다. 신경림 시인은 구순에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좋은 시를 썼다. 그런 모습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는 40년 동안 시를 썼는데, 한용운의 '알 수 없어요'나 윤동주의 '별 헤는 밤' 같은 좋은 시를 여태 못 썼어요. 우리 시인들은 스스로 물어야 해요. 선배들만큼 좋은 시를 썼느냐고요. 아직 못 썼다면 그걸 써야죠."
jae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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