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um App

Experience a richer experience on our mobile app!

덴마크 작가 나야 마리 아이트 "순수한 절망서 나온 글"

by


아들 죽음 애도하며 쓴 '죽음이 너에게서 무언가를 앗아갔다면' 펴내
"삶과 죽음 통찰, 아들의 선물…인간은 트라우마 이겨내기 위한 존재"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새로운 형태의 글이라는 게 책상에 앉아서 발명한 것은 아닙니다. 순수한 절망에서 나온 글이에요."
덴마크 작가 나야 마리 아이트는 2일 서울 중구 스페이스에이드 드림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저서 '죽음이 너에게서 무언가를 앗아갔다면'에서 선보인 실험적 형식이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오는 4일 열리는 연세노벨위크 국제 심포지엄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다.
1963년 그린란드에서 태어난 그는 1991년 시집으로 데뷔했으며, 이후 시와 소설, 극작, 노래, 동화책 등 다양한 영역을 오가며 전방위로 글을 썼다.
2020년 덴마크 한림원 대상, 2022년 '작은 노벨상'이라 불리는 한림원 북유럽상을 받았으며,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꼽힌다.
최근 한국에 번역·출간된 '죽음이 너에게서 무언가를 앗아갔다면'(민음사)은 형언조차 어려운 참척(慘慽)의 고통에 대한 기록이다.
2015년 3월 작가의 25세 아들 칼이 비극적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1년간의 처절한 정신적 몸부림이 담겼다.
이 책은 시와 산문, 일기, 인용문 등 다양한 텍스트들이 모여 하나의 콜라주(collage)를 이룬다.
아들에 대한 기억은 하나의 체계를 이루기보다 짧은 파편 형태로 무작위로 반복·교차한다.
작가는 "(아들) 칼의 책을 쓰기 시작한 것은 아들이 죽고 9개월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며 "날것의 슬픔, 충격, 비통함, 일상이 살아지지 않는 사람이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쓴 책"이라고 말했다.

실제 책에서도 작가가 겪은 고통의 흔적이 역력하다.
"나는 제정신이 아니다"(31쪽), "언어가 불가능하다 언어는 내 아이와 함께 죽었다"(96쪽)는 작가의 고백은 마치 비명처럼 들린다.
실제 작가는 아들이 죽고 난 후 "오랫동안 말도 못 하고 글도 못 썼다. 언어를 완전히 잃은 줄 알았다"며 "문학에 대한 희망도 미래에 대한 희망도 잃은 줄 알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런 그는 아들 사후 6개월이 지나서 휴대전화에 단어나 문장 조각들을 적기 시작했다.
이렇게 적은 언어들을 모아봤더니 "조각난 언어의 파편"이었다며 조각나고 망가진 언어를 담아내기 위한 새로운 형식이 필요했다고 작가는 설명했다.
그는 또 "표현을 하는 게 불가능한 상황에서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찾는 시도를 해보는 게 중요했다"며 "아들이 죽고 나서 문학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했다. 닥치는 대로 애도와 관련된 작품을 읽고 일부는 인용도 했다"고 말했다.
문학이 가진 치유의 힘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작가는 "문학으로서 나 자신을 보살핀다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누군가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는 것을 알려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저자는 그렇게 아들을 가슴에 묻고 희망으로 한 걸음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긴다.
"상실감의 바탕인 사랑이 상실 자체보다 크기를, 또한 그 사랑이 사랑과 공감을 만들어 내기를 희망해야 한다."(145쪽)

"죽은 아이를 생각한다. 그의 시간과 그의 삶은 내 안에 들어와 있다. 나는 그를 낳았다. 나는 그의 죽음을 견뎌야 한다. 나는 암사자처럼 계속 그를 위해 싸울 것이다."(157쪽)
그는 "고통을 지나서 얻는 통찰이 있는데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도 열리고, 인생을 잘 이해할 수 있다"며 "(이런 성찰이) 칼을 보내고 싶진 않았지만 칼이 상실을 통해 준 선물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간담회를 마무리하며 대규모 참사로 상실을 겪은 한국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자 그는 "어리석게 들릴 수 있지만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고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칼이 떠난 뒤 10년이 지났는데 매해 비통함의 물결이 조금씩 낮아진다는 느낌을 받아요. 인간은 트라우마를 이겨내기 위한 존재고 반드시 이겨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견딜 수 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kihun@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