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 8일, 페퍼저축은행전을 마친 수원실내체육관.
조명이 꺼지고 등번호 14번이 영구결번으로 새겨지고 오랜 세월 함께 한 가까운 분들의 얼굴을 마주치는 순간, '철의 블로커' 양효진(37)의 눈시울이 결국 붉어졌다.
평소 코트 위에서 긴장을 하지 않기로 유명한 그였지만, 19년 동행의 마침표 앞에서는 잠을 설칠 만큼 복합적인 감정이 교차했다.
은퇴식을 마친 양효진은 인터뷰실에서 그간 못다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양효진은 "원래 긴장을 안 하는 성격인데, 오늘은 신경이 쓰여서 잠을 잘 수 있는 걸 먹고 겨우 잤다"며 "은퇴 선언을 하고 구단과 감독님, 동료들에게 알릴 때까진 홀가분했는데, 막상 은퇴식을 앞두니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고 복잡한 심경을 고백했다.
꾹 참았던 눈물은 소중한 인연들 앞에서 터져 나왔다.
"가족사진을 찍고 연경 언니, 신영석 선수, 그리고 (김)다인이와 (강성형) 감독님 같은 가까운 분들을 맞닥뜨리니 지난 19년의 희노애락이 갑자기 느껴졌다"는 그는 "진짜 안 울려고 했는데 힘들었던 것, 즐거웠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고 말했다.
2007년 입단 후 19시즌 동안 원클럽맨으로 뛴 양효진의 커리어는 그 자체로 KOVO의 역사다. 그는 자신의 19년을 세 단계의 목표로 회상했다.
"신인 시즌을 보내고 나서는 상을 많이 받는 선수가 되고 싶었고, 그 다음엔 최고 연봉을 받는 선수가 되고 싶었어요. MVP를 향해 달려가던 시기도 있었죠. 하지만 마지막 종착지는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였어요. 그 목표가 마지막이었기에 마음 홀가분하게 플레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팬들이 붙여준 '거대한 귀요미'라는 별명에 대해서는 여전히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런던 올림픽 때 생각지도 못한 어린 나이에 팬들이 늘어났던 시점의 별명인데, 지금도 부끄러워요. 키는 큰데 얼굴살이 많아서 그런 별명을 지어주신 것 같아요."
많은 이들이 여전히 정상급 기량을 유지 중인 그의 은퇴를 아쉬워하지만, 양효진의 생각은 다르다.
"4년 전부터 준비했어요. 시작은 모르겠는데, 그만두려니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더라고요. 잘하고 있을 때 그만두고 싶었어요."
절친한 선배 김연경도 처음엔 "1, 2년만 더 하자"며 아쉬워했지만, 결국 "마무리를 잘하는 게 나중에 더 소중한 순간이 될 것"이라며 그의 결단을 지지했다. 남편 역시 "무엇이든 선택을 존중한다"며 묵묵히 곁을 지켰다.
양효진은 기록보다 후배들의 마음에서 더 큰 뿌듯함을 느꼈다.
"후배들이 기록을 세울 때마다 꽃다발과 편지를 주며 '옆에서 보고 배울 게 많았다'고 말해줄 때, 내가 누군가에게 귀감이 되는 선수가 됐구나 싶어 감동적이었어요"라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향후 계획에 대해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에 도전해보고 싶다"면서도, 원래 꿈이었던 교사와 연관된 '지도자'의 길에 대해서는 "자신감이 생기면 도전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비록 이날 페퍼저축은행전에서 패했지만, 양효진의 시선은 다시 코트를 향했다.
"오늘도 이기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아쉬웠어요. 하지만 많은 축하를 보며 다시 힘이 났어요. 남은 시즌 아픈 선수들도 많지만 똘똘 뭉쳐서 최대한 정상의 자리까지 갈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19년간 한결같이 수원 코트의 중앙을 지켰던 거대한 벽. '선수'로서의 마지막 여정을 우승 트로피와 함께 마무리하기 위해 다시 코트에 선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글·사진 수원=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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