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나유리 기자] 일본과 미국이 결승전에서 다시 만나는 시나리오를 아마 대회 주최측은 꿈꿨을텐데. 그 상상을 베네수엘라가 한 방에 박살냈다.
베네수엘라 야구 대표팀은 15일(이하 한국시각) 미국 플로리다 마이애미 론디포파크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일본과의 8강전에서 8대5로 승리했다. 오타니 쇼헤이를 비롯해 몸값 높은 선수들이 즐비한 일본은 국제 대회때마다 강한 단결력을 보여주며,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해왔다. WBC에서 일본이 준결승에 진출하지 못한 대회는 한번도 없었다.
그런데 그 역사를 베네수엘라가 완벽하게 부숴버렸다. KBO리그 출신 엔마누엘 데 헤이수스가 승리 투수가 됐고, 오타니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좀처럼 실수를 하지 않던 일본도 베네수엘라의 엄청난 집중력과, 투수들의 강속구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이었다. 결국 베네수엘라가 일본을 떨어트리면서, 준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동시에 2028 LA 올림픽 출전권도 따냈다. 미국, 도미니카공화국에 이어 세번째 확정이다.
경기가 끝난 후 베네수엘라 대표팀의 오마르 로페즈 감독은 깜짝 발언을 했다. 바로 그가 베네수엘라 감독으로서의 급여를 받지 않고있다는 사실이다. 로페즈 감독은 "저는 무보수로 일하고 있다. 감독으로서 급여를 받지 않는다"고 해 기자회견장에 있던 많은 취재진을 놀라게 했다. 그는 "급여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하면서 "국가대표를 이끌고 국민들에게 기쁨을 선사하는 것이 가장 큰 보상"이라고 했다.
로페즈 감독은 현재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 벤치코치를 맡고 있다. 자신의 본래 직업이 있기 때문에 개인 수입이 0원은 아니겠지만, 현재 베네수엘라야구협회가 내부 사정상 국가대표 감독에게 급여를 줄 수 없는 상황으로 해석된다.
베네수엘라는 이미 수년전부터 초인플레이션 현상이 일어나면서 내수 경제가 크게 침체된 상황이다. 여기에 지난해 11월 미국이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생포해 미국으로 압송한 후로도 경제, 정치적으로 어수선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로페즈 감독은 말 그대로 조국을 위한 봉사 정신으로 현재 감독직을 맡고 있는 셈이다.
로페즈 감독은 "승리 소식이 전해지자 베네수엘라 전역에서 축하 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모두가 거리로 나와 술을 마시고 환호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볼 수 있어 정말 기쁘다. 이게 내가 조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만족해했다.
그는 또 "우리가 일본을 이겨서 야구 강국이 된 게 아니라, 항상 강국이었다"고 베네수엘라 야구의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일본을 탈락 충격 속으로 몰아넣은 베네수엘라는 17일 이탈리아와 결승 진출을 위한 승부를 펼친다.
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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