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와 인구이동으로 전국에 빈집이 늘고 있습니다. 해마다 생겨나는 빈집은 미관을 해치고 안전을 위협할 뿐 아니라 우범 지대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농어촌 지역은 빈집 문제가 심각합니다. 재활용되지 못하는 빈집은 철거될 운명을 맞게 되지만, 일부에서는 도시와 마을 재생 차원에서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매주 한 차례 빈집을 주민 소득원이나 마을 사랑방, 문화 공간 등으로 탈바꿈시킨 사례를 조명하고 빈집 해결을 위한 방안을 모색합니다.]
"사람 떠난 한옥이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는 '사랑채'로 탈바꿈했습니다."
광주 동구 계림동 한 골목 어귀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면 낮은 담장 너머로 기와지붕을 얹은 한옥 한 채가 모습을 드러낸다.
낡은 외관을 뒤로 하고 삐그덕거리는 미닫이문을 열어젖히면 진풍경이 펼쳐진다.
서로 다른 색의 나무판자를 덧대 리모델링한 마룻바닥에는 지역에서 내로라하는 예술인들의 작품이 전시됐다.
1947년 지어진 이 한옥은 일본인이 살다가 떠난 뒤 수십 년 동안 방치됐지만, 현재는 '계림미술관'으로 재탄생해 주민들을 위한 복합문화예술시설로 활용되고 있다.
전남대학교 미술동아리 '그리세'를 거쳐 간 창립 멤버와 예술가 10여명이 주축이 돼 헌책방 거리에 자리한 가옥에 미술관을 조성, 2020년 1월 문을 열었다.
전통·역사성을 살리기 위해 벽을 허물거나 공간 구조를 바꾸기보다는 기존 가옥 형태를 유지한 채 전시 공간,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거주 공간을 별채에 마련했다.
계림미술관의 매력은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라는 데 있다.
주민 누구나, 아무 때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출입문을 잠그지 않는다.
예술인들은 기한 없이 별채에 머물며 레지던스로도 활용하고 있다.
작품 활동으로 생긴 흔적을 지우지 않는 것도 특징인데, 예술가들이 사용했던 재료나 미완성 작품은 그 자체로 새로운 전시물이 되기도 한다.
미술관에는 진시영·정운학·박정용·김혜경 등 50여명 작가가 거쳐 갔으며 개관 이래 20차례 이상 전시가 열렸다.
천장에는 가옥의 시간을 간직한 '상량문'이 남아있다.
상량문은 집을 지을 때 대들보를 올리며 그 연도와 의미를 기록한 글로, 가옥의 탄생 배경이나 안녕과 무탈을 기원하는 문구를 담는다.
한자가 빼곡한 상량문에는 "하늘의 삼광에 응해 인간의 오복을 갖추게 하소서"라는 문장이 적혔고, 그 바람은 미술관으로 탈바꿈한 뒤에도 유지되고 있다.
계림미술관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채종기 관장의 역할도 컸다.
그는 아버지가 매입한 가옥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기억을 되살려 변신을 주도했다.
채 관장은 "사람들이 찾아와 머물고, 예술로 대화를 주고받는 장소로 기억됐으면 한다"며 공간에 쌓인 시간과 이야기가 이어지기를 바랐다.
채 관장은 "출입문을 닫는 순간 이 공간도 죽는다고 생각한다"며 "누구나 편하게 드나들며 자연스럽게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곳으로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dau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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