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um App

Experience a richer experience on our mobile app!

남영동 절규어린 '금빛 훈장' 박탈되나…경찰, 7만개 전수조사

by 스포츠조선
[연합뉴스 자료사진]
Advertisement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 6월 항쟁 33주년을 맞은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에 박종철 열사의 추모 공간이 마련돼있다. 509호는 박종철 열사가 경찰 고문을 받다 숨진 조사실이다. 2020.6.10 hwayoung7@yna.co.kr
>

과거 독재정권 하에서 고문과 간첩 조작의 공로로 포상을 받은 수사 관계자들의 서훈을 취소하기 위해 경찰이 첫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Advertisement

경찰청은 이달 초부터 1945년 창설 이래 경찰관들에게 수여된 정부 포상과 대통령·국무총리 표창 7만여개의 공적 사유를 모두 파악하고 있다고 29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국가 공권력을 불합리하게 행사한 사례들이 취소 대상"이라며 "그간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가담한 신군부 협력자에 대한 조사는 여러 차례 있었으나 (공권력 남용과 관련해서는)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Advertisement

현행 상훈법에 따르면 공적이 거짓으로 밝혀진 경우 훈·포장을 취소할 수 있다. 2017년부터는 정부표창규정이 개정되면서 대통령·국무총리·기관장 표창도 박탈할 수 있게 됐다.

경찰은 조만간 조사를 종료하고 서훈·표창 취소 대상자를 국무총리실에 보고할 계획이다. 이후 심의위원회를 열고 당사자 소명을 들은 뒤 행정안전부에 취소를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Advertisement

행안부는 2018년부터 경찰과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이상 국가정보원 전신)에 몸담으며 간첩 조작에 가담한 74명의 서훈을 취소했다. 그러나 연합뉴스 취재 결과 가해자 상당수가 여전히 국가로부터 고문과 조작의 '공로'를 인정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5일 사망한 '고문 기술자' 이근안은 생전 16개의 상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박탈된 사실이 공식적으로 확인되는 건 1986년 당시 대통령인 전두환 씨로부터 받은 옥조근정훈장 하나뿐이다.

Advertisement

전두환 정권 출범 한 달여 뒤인 1980년 10월 7일 이근안이 받은 국무총리 표창은 반세기 가까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피살된 10·26 사건 이후 '수사업무'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당시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 소속이었던 이근안은 신군부의 검열에 맞서 제작 거부를 선언한 언론인들에게 전기고문과 고춧가루 물 먹이기 등 각종 고문을 자행했다.

당시 합동통신 기자로 이근안에게 고문당한 유숙열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는 "이근안이 제대로 된 사죄도 반성도 하지 않고 가버렸다는 사실에 감정이 복잡하다"며 "표창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 관계자는 "2006년 옥조근정훈장이 박탈될 당시에는 표창 취소 규정이 없었다"며 "이후 법률이 개정됐으나 표창이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20년이 흐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1985년 이근안과 함께 고(故)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고문해 실형이 확정된 백모·김모 전 경감 등도 전두환 정권에서 여러 훈·포장을 받았으나 취소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남영동 대공분실의 총책임자였던 박처원(1927∼2008) 전 치안본부 대공수사처장(치안감)은 상훈 기록에서 공개된 포상만 무려 13개에 달한다.

1947년부터 40년간 경찰에 몸담은 박 전 치안감은 '대공 경찰의 대부'로 꼽힌다. 영화 '1987'에서 김윤석이 연기한 '박 처장'의 모델인 그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궤변을 남긴 인물로도 유명하다.

민주화 직후인 1988년 이근안의 이름과 얼굴이 세상에 알려지자 11년간의 도피를 지시하고 자금을 지원했다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받기도 했다.

그는 국가안전보장에 기여한 이에게 수여되는 보국훈장 2개를 비롯해 근정훈장 2개, 무공훈장 1개, 무공포장 2개, 대통령 표창 4개, 국무총리 표창 2개를 받았다.

특히 보국훈장 수훈자는 국가유공자로 분류돼 교육 지원과 취업 가점 등 여러 혜택을 받는다. 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기관장급 표창 등을 더하면 박 전 치안감이 실제 받은 포상은 40여개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의 전수조사를 계기로 국가가 주는 최고의 영예인 서훈에서마저 뒤집힌 가치 기준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018년 국가폭력 가해 공무원들의 서훈 취소를 이끈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경찰이 자정 노력에 나선 건 환영할 일"이라며 "고문에 눈감았던 검찰과 법원을 비롯해 다른 기관으로까지 움직임이 확대돼야 한다"고 했다.

실제 1980년 '계엄 수사 공로'를 인정받은 표창 수훈자에는 이근안 등 경찰 8명 외에도 국군보안사령부(방첩사령부 전신) 수사관 58명이 포함됐다.

의자에 앉혀 지하로 떨어뜨리는 '엘리베이터 고문'으로 악명을 떨치며 '보안사의 이근안'이라 불리는 고병천도 표창을 유지하고 있다.

경찰이 국무총리 표창을 기준으로 제시하며 기관장 표창 등은 전수조사 대상에서 배제한 건 한계로 지적된다. 이 기준에 따라 이근안이 1981년 '서울대 무림 사건' 조작 공로로 받은 내무부 장관 표창 등 상당수가 박탈될지도 미지수다.

최 변호사는 "경찰이 행정안전부 장관 표창을 받는다는 건 대단히 자랑스럽고 명예로운 일 아니냐"며 "현실적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전수조사의 기준을 임의로 정한 건 오히려 상의 가치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away777@yna.co.kr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