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고재완 기자] 화려했던 오렌지색 불꽃 가발도, 우렁찼던 응원 구호도 요즘 눈에 잘 띄지 않는다. '1억 1300만 달러(약 1700억 원)의 사나이' 이정후(28·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타격 부진에, 그를 향해 뜨거운 환호를 보내던 열성 팬덤 '후리건스(Hoo-LEE Gans)'마저 관중석에서 자취를 감췄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샌프란시스코의 홈구장 오라클 파크의 명물은 단연 '후리건스(Hoo Lee Gans)'였다. 축구의 훌리건(Hooligan)과 이정후의 이름 (Hoo LEE)을 결합해 만든 이 자발적 팬클럽은, 불꽃 가발을 쓰고 가슴에 'HOO LEE GANS'가 새겨진 티셔츠를 맞춰 입은 채 열광적인 KBO식 단체 응원을 펼쳐 미국 현지에서도 전국적인 화제를 모았다.
창립 당시 팬클럽 대표 카일 스밀리는 "KBO 스타일의 영향을 받은 이정후의 독특한 플레이가 인기의 비결"이라며 "지금 샌프란시스코 에너지의 중심에는 이정후가 있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전용 웹사이트까지 개설되며 전 세계 야구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그들이다.
하지만 2026시즌 초반, 오라클 파크 어디에서도 이들의 화려한 퍼포먼스는 중계 화면에서도 잘 잡히지 않는다. 냉혹한 메이저리그의 세계, 성적이 곤두박질치자 뜨겁게 달아올랐던 팬덤의 열기도 거짓말처럼 차갑게 식어버린 것.
이정후는 빅리그 진출 첫해였던 2024년, 어깨 부상으로 단 37경기 출전에 그치며 아쉬움을 삼켰다. 절치부심한 이듬해(2025년)에는 150경기를 소화하며 타율 0.266, 8홈런, 55타점을 기록했다. 특히 지난해 5~6월 타율 1~2할대의 극심한 슬럼프를 겪으며 '영입 실패'라는 비판 여론에 직면하기도 했으나, 7~8월 귀신같이 폼을 끌어올려 팀 내 WAR 1위를 다투며 극적인 반전을 이뤄냈다.
그러나 빅리그 적응을 완전히 마쳤으리라 굳게 믿었던 올 시즌, 출발은 충격적이다 못해 처참하다. 시즌 초반 타율은 1할대(0.162)를 맴돌고 있으며, 타석에서는 무기력한 땅볼과 삼진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 6일 뉴욕 메츠전에서는 4타수 무안타 3삼진으로 굴욕을 맛봤다. 7일 필라델피아전에서 154km 강속구를 때려내며 간신히 안타 1개를 신고했지만, 여전히 타격 타이밍을 찾지 못해 허덕이는 모습이 역력하다.
성적이 떨어지자 민심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지난해 최악의 슬럼프 당시 구단 공식 SNS를 뒤덮었던 비판 여론조차 지금은 무거운 침묵과 무관심으로 바뀌어가는 분위기다. 샌프란시스코에 '스타성'과 '에너지'를 불어넣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막대한 몸값에 대한 뼈아픈 회의론만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해답은 오직 하나뿐이다. 프로는 성적으로 말하고, 타자는 방망이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사라진 '불꽃 가발' 부대를 다시 오라클 파크 관중석으로 불러모으기 위해서는, 이정후 스스로 기나긴 슬럼프의 터널을 뚫고 나와 KBO리그 최고 교타자다운 날카로운 스윙을 되찾아야만 한다. 차갑게 얼어붙은 샌프란시스코의 봄, 바람의 아들의 방망이는 언제쯤 다시 뜨겁게 타오를 수 있을까.
고재완 기자 star77@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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