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차렷! 인사!" 실업럭비 경기 전 본부석 내빈 향한 '인사 강요' 논란..."구시대적 행태...선수, 팬 중심 럭비 문화 절실"

아프리카TV 중계
아프리카TV 중계
화면 캡처=아프리카TV 중계
Advertisement

[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선수 일동 차렷! 인사!"

Advertisement

전국럭비실업리그에서 때아닌 '인사 강요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 11일 열린 전국럭비실업리그 3라운드, 경기 휘슬 직전 양팀이 그라운드에 도열한 상황에서 경기 진행을 맡은 대회 위원장이 장내 마이크를 잡고 양팀 선수 및 심판들에게 본부석을 향한 인사를 지시한 것. "본부석에 많은 럭비 원로 및 선배님들이 참석해 주셨다. 예의를 표현하겠다. 선수 일동 차렷! 인사!"라는 구령에 맞춰 외국인 주심 등 심판진과 선수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당시 본부석엔 럭비 원로와 협회 임직원들이 앉아 있었다. 경기를 앞둔 선수, 심판들이 본부석을 향해 단체로 인사를 하는 생경한 풍경이 펼쳐졌다. 이튿날 '2026 송화 전국 춘계 럭비 리그전' 고려대-연세대전 직전에도 이 장면은 재연됐다. 대한럭비협회는 국내 실업 럭비 최강팀을 가리는 '2026 전국 럭비 실업리그'를 3월 28일 개막해 현재 3라운드까지 진행됐고, 내빈들을 향한 인사는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양팀 선수들이 서로를 존중하는 뜻에서 인사를 나누고, 체조 등 채점 종목의 경우 심판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연기 후 심판진에게 인사하는 경우는 있지만 어떤 종목에서도 경기 전 공식 순서에 경기와 무관한 특정인, 특히 내빈, 원로를 향한 단체 인사를 강요하는 경우는 없다. 경기와 경기인인 선수들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설령 국가수가 오더라도 마찬가지다. 축구의 경우 협회장, 구단주 등 내빈들이 경기 전 도열한 선수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격려하는 식전 행사는 있지만 이들을 향해 단체로 인사하는 경우는 없다. 원로와 선배에 대해 예를 갖추는 일은 기본이고, 경기 전후 그라운드 밖에서 하면 될 일이지 경기의 일부는 아니다. 선수와 팬 중심이어야 할 경기장, 스포츠 현장에선 결코 있을 수 없는 구시대적, 시대착오적 행태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화면 캡처=아프리카TV 중계
Advertisement

이날 경기에 참가한 A선수는 "20년 넘게 럭비를 하고 있는데 원로들에게 단체 인사를 하는 순서가 들어간 건 처음이었다. 중고등학교 때도 없었던 일"이라고 했다. "다들 얼떨결에 인사를 하긴 했는데 본부석 어느 쪽으로 인사를 해야할지, 어떤 분이 오셨는지도 전혀 몰랐다. 그냥 인사를 했는데 지금도 누가 오셨는지는 모른다"며 씁쓸해 했다. "럭비 레전드가 왔다면 경기 전 안내 코멘트를 하면 된다. 경기 전 외국인 심판까지 포함해 선수들에게 인사를 시키는 건 처음이었다. 당연히 국제대회서도 없는 일이다. '갑자기 이게 뭐지?'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현장에서 해당 장면을 목도한 김성남 전 고려대 감독은격분했다. 자신의 SNS를 통해 "경기를 준비하고 있는 선수들과 심판들에게 본부석 인사라니, 도대체 누구를 위한 본부석이냐"며 "이런 권위주의적 발상은 선수들의 자부심을 짓밟는 행위"라고 강한 유감의 뜻을 표했다. "단순한 관례나 행사 진행상의 문제가 아니라, 선수 및 경기 관계자의 인권과 스포츠의 본질적 가치를 훼손한 중대한 사안"이라고 봤다. "대한민국 럭비는 특정 누군가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선수와 팬, 그리고 현장의 땀으로 유지되는 스포츠"라며 "아무 조치 없이 넘어간다면 나는 럭비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Advertisement

OK 읏맨 럭비단 구단주인 최윤 OK금융 회장 역시 목소리를 냈다. 최 회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경기 현장에서 목격한 상황에 참으로 깊은 안타까움과 유감을 느낀다"면서 "선수들의 감정과 컨디션을 세심히 살피지는 못할망정, 본부석을 향해 환영 인사를 강요하는 행태는 다른 종목에선 찾아볼 수 없는 부적절한 관행이자 구시대적인 발상 그 자체"라고 지적했다. "본부석에 앉아 대접받기를 기대하기 전에 과연 대한민국 럭비 발전을 위해 무엇을 헌신하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면서 "치열하게 경기를 준비해온 선수들에게 모멸감을 안겨준 이번 사안을 지시하고 실행시킨 협회 관계자들은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이를 계기로 한국 럭비가 선수와 팬들이 중심이 되는 정상적인 무대로 거듭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편 럭비 현장의 논란과 비판이 이어지는 가운데 해당 사안과 관련 스포츠윤리센터에 조사와 징계를 요구하는 신고가 접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