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의 재발견] 5만년 전 떨어진 우주의 흔적…합천 운석충돌구 신비

[촬영 박정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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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저출산·고령화와 청년 유출로 지역 소멸 위기가 커지는 가운데 연합뉴스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각 지역의 숨은 자랑거리와 이야깃거리를 재발견하는 기획을 시작합니다. 문화·경제·사회 전반에서 인물, 음식, 문화재, 특산물, 관광지 등은 물론 차별화된 경쟁력을 지닌 다양한 아이템을 발굴해 매주 토요일 송고할 예정입니다. 이를 통해 지역의 자부심 제고, 관광 활성화,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 등을 추진함으로써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매일 농사짓고 발 딛고 서 있는 이 땅이 5만년 전 하늘에서 떨어진 별의 흔적이라니 볼 때마다 경이롭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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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군 초계면 대암산의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한참 올라 도착한 산불감시대 초소에서 바라본 운석충돌구의 풍경은 압도적이었다.

발아래로는 거대한 그릇 모양의 분지가 끝없이 펼쳐져 있고, 그 한가운데 옹기종기 모인 민가와 바둑판처럼 정렬된 논밭이 평화롭게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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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만난 산불감시대 초소 근무자 안정철(64) 씨는 "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산들이 분지를 동그랗게 감싸고 있는 게 꼭 커다란 대접 같다"며 "평범한 시골 마을인 줄만 알았는데 운석이 충돌한 지형이 있다는 얘기에 외지 사람들도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원경에서 바라본 초계면 일대는 주변 산세가 성벽처럼 둘러싸고 있는 완벽한 원형 지형으로 약 5만년 전 우주의 신비를 간직한 '타임캡슐'이자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공식 인증된 운석충돌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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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로시마 원폭 9만배 위력이 만든 '우주 호수'

오랜 세월 이곳은 단순히 독특한 지형으로만 여겨져 왔다.

하지만 2020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국제 학술지 '곤드와나 리서치(Gondwana Research)'에 관련 논문을 발표하며 운석충돌구라는 사실이 세상에 밝혀졌다.

연구팀이 분석한 결과 약 5만년 전 지름 약 200m 크기의 거대 운석은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비스듬히 지표면에 충돌했다.

이때 발생한 에너지는 히로시마 원자폭탄 위력의 9만배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충격으로 순식간에 직경 7㎞, 깊이 수백 미터의 거대한 구덩이가 파이며 한반도 남부 지형을 뒤바꿔 놓았다.

충돌 직후의 합천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폭발로 패인 깊은 구덩이에 지하수와 빗물이 차오르며 깊이 100m가 넘는 거대한 '우주 호수'가 형성됐다.

◇ 호수가 평평한 지형으로 변화…지구 산소 농도의 비밀 확인

지질학자들은 시추 코어 분석을 통해 이 호수의 5만년 역사를 세 단계로 밝혀냈다.

약 1만2천630년전 호수의 외벽 일부가 침식으로 붕괴하면서 가둬져 있던 엄청난 양의 물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극적인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호수가 순식간에 비워지며 바닥이 드러났고, 비옥한 퇴적층이 남겨지며 현재의 평평한 농경지 지형이 완성됐다.

퇴적층 속에는 구석기 시대 식물 화석과 충돌 당시 뒤섞인 '오래된 탄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한반도 과거 기후 연구의 보물창고 역할을 하고 있다.

지표면에 남겨진 우주의 흔적은 이제 지역경제를 살리는 활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 지구 초기 생명의 흔적인 '스트로마톨라이트'가 발견되면서 관심을 끌고 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따르면 운석충돌구 북서쪽에서 직경 10∼20㎝ 크기의 스트로마톨라이트가 여러 개 확인됐다. 이는 합천지역 내 첫 보고 사례다.

연구팀은 약 5만년 전 운석 충돌 이후 형성된 뜨거운 '열수(熱水) 호수' 환경이 미생물의 성장을 촉진해 이 퇴적체를 형성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는 단순히 지역적 발견을 넘어 초기 지구의 산소 농도가 급격히 증가한 '산소대폭발 사건'의 비밀을 풀 실마리로 평가받는다.

◇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도전…'우주 과학 관광 성지' 도약

군은 이 유일무이한 우주적 자산을 활용해 '지질 관광(Geo-tourism)' 브랜드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단순한 지형 보존을 넘어 군은 초계면 일대에 '합천 운석충돌구 거점센터' 건립과 전시 콘텐츠 구축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센터는 과학적 신비와 웰니스 치유가 결합한 새로운 관광 모델의 중추가 될 전망이다.

현재 상품화 단계에 있는 '운석빵'과 우주 테마 콘텐츠들은 관광객들에게 미각과 시각을 아우르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할 준비를 하고 있다.

관광객 체류를 유도하기 위한 '합천 반값여행' 사업도 본격 시행 중이다.

해인사와 황매산, 그리고 운석충돌구를 잇는 '합천 관광 삼각 축'은 이제 과학적 호기심과 영적 치유, 자연의 아름다움이 어우러진 독보적인 로컬 브랜드로 완성되고 있다.

합천 운석충돌구의 가치는 이제 국내를 넘어 세계로 향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중국 '시우얀 충돌구'에 이어 두 번째이고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공인된 이곳을 국가지질공원 인증을 거쳐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올리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임보성 관광진흥과 주무관은 "합천 운석충돌구는 충돌 직후 형성된 환경 기록을 5만년 동안 온전히 보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독보적"이라며 "로컬 브랜딩과 결합해 전 세계인이 찾는 '우주 과학 관광의 성지'로 거듭나게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home122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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